2006년 6월 5일 LG 구단 사무실. 초췌한 표정의 이순철 LG 감독이 김영수 사장을 찾았다. 평소 같으면 구단 프런트들이 하나같이 “어쩐 일이십니까. 감독님”하고 반겼을 테지만 그날 이 감독과 시선을 마주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장실로 들어간 이 감독이 양복 상의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구단주님을 비롯해 구단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는데 제대로 보답도 드리지 못하고….”

김 사장은 허공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리 없는 일이었다. “수고했소. 이 감독” 김 사장은 그렇게 말한 뒤 이 감독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이순철은 김 사장의 체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성적부진, 이순철 LG 감독 전격 사퇴’라는 큼지막한 제목이 써진 신문을 손에 쥐었다.

흔히 이순철 전 LG 감독의 재임기간을 가리켜 ‘잃어버린 3년’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게 2004, 2005년 이순철이 이끈 LG는 연속 6위에 그쳤고 2006년은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여기다 이상훈, 유지현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트레이드와 은퇴로 팬들 곁을 떠난 반면 진필중, 마해영 등 외부 영입선수들은 최악의 성적을 냈다.

2007년 김재박 감독을 영입하며 LG는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지난해 시즌 종반까지 4위 다툼을 벌이며 LG는 중환자 집중치료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 환자처럼 병세가 호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성적만 놓고 본다면 LG의 잃어버린 3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시즌 창단 이래 처음으로 꼴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박동희의 Mr.베이스볼>에서는 현역 시절 ‘해태신화’의 리더이자 가장 성공한 야구선수로 꼽힌 1998년 이전의 이순철이 아닌 1998년 이후 10년 동안의 이순철을 돌아보고자 한다. 일부 LG팬들은 지금도 ‘이순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껌을 씹다가 껌에 달라붙은 은박지를 어금니로 깨물 때 같은 인상을 쓰기도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순철이 말하는 1998년 이후의 이순철을 들은 적이 없다. 판단은 역시 독자의 몫이다.


올시즌 히어로즈 수석코치로 현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이광환 감독과 함께 시즌 종료 뒤 바로 하차했다.

사실 시즌 중반에도 몇 차례 (구단을)나오려고 했다. 말 못할 내부 사정들이 좀 있었다.

내부 사정이라면.

감독출신이 수석코치를 맡다보니까 대우문제도 없지 않았고. (말끝을 흐리며)본의 아니게 감독님에게 부담을 드리기도 했고….

한창 시즌 중 “이 감독 중도퇴임 뒤 이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을 것”이란 루머가 돌았다.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시즌 중반 제주도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경기결과가 무척 좋지 않았다. 그걸 보고 이장석 히어로즈 대표가 박노준 전 단장한테 ‘감독 대행체제’로 가자고 한 모양이다. 당시만 해도 난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시즌 종료를 앞두고 기자들을 통해 그런 루머가 돌았다는 걸 알게 됐다.

루머를 들은 뒤 이 감독에게 찾아갔나.

처음에는 ‘나만 진실하면 되지 않나’ 싶어 일체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감독님이 단단히 오해를 하신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가 심해지는 같아 하루는 감독님께 찾아갔다.

이 감독에게 찾아가 무슨 말을 했나.

“감독님, 외부에 루머가 많이 도는데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하던가.

“나도 듣고 있다” 고 하셨다. 그래 내가 그랬다. “감독님, 저 세상 그렇게 안 살았습니다. 만약 제가 이장석 대표와 커피 한 잔 마셨으면 제가 이장석 대표 뱃속에서 나온 놈입니다. 저도 LG 감독을 하면서 믿었던 이가 구단 관계자와 합심해 절 음해해 고통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제가 이 팀에서 뭘 해먹겠다고 감독님을 그렇게 모시겠습니까.”

이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

그제야 오해를 푸신 것 같았다. 사실 감독님이 ‘감독 대행체제’ 말이 나왔을 때 날 추천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수석코치니까. 그걸 박 전 단장이 중간에서 커트해 없던 일일로 한 모양이었다. 이 역시 나중에야 들은 사실이다.

LG에선 감독, 히어로즈에선 수석코치로 일했는데 양팀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기량에선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확실히 히어로즈 선수들이 워낙 경험이 풍부하다보니까 경기를 스스로 풀어갈 줄 안다. 반면 LG 선수들은 경험이 적은 까닭은지 자기 야구를 펼치는 능력이 떨어진다. 야구는 벤치에서 사인이 없어도 선수 스스로 작전을 펼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구에 관해 학습량이 가장 많은 야구인으로 꼽힌다. 현재 해외 야구연수를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학습량이 많은 야구인? 내가? (손을 가로저으며)과찬이다. 1998년 미국으로 야구연수를 떠나 선진야구를 경험한 바 있다. 더 늦기 전에 일본프로야구팀 1군 연수를 통해 아시아야구를 폭넓게 배우고 싶다.

당신의 야구연수 계획을 모르는 팬들은 히어로즈 수석코치에서 물러난 뒤 방송복귀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데.

방송복귀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웃음).

당신은 현역시절 골든글러브 4회나 수상했고 LG 감독을 역임한 중량감 있는 야구인이다. 그러나 지난해 MBC ESPN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뒤 ‘해설가 이순철’로 더 유명해진 듯하다.

개인적으로 방송은 큰 충격이자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히나 방송을 하며 야구 공부를 이전보다 더 많이 하게 됐다. 지난해 MBC ESPN은 물론이려니와 타사 야구중계까지 시청하며 꼬박 날을 샌 적이 셀 수 없이 많다.

해설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참에 그와 관련된 질문을 좀 하자. 당신 해설의 장점으로 누군가 ‘논리 정연한 이론과 정확한 예측’을 꼽던데.

야구역사가 100년이 넘으면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작전과 플레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나라고 새로운 작전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난 그저 수면 위에 드러난 야구의 수많은 특징들을 이론으로 정립해 시청자에게 전달할 뿐이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론이 수반되지 않은 설명이나 주장은 억지가 아닌가 싶다.

이론과 논리로 무장한 당신의 해설이 시청자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갸웃하며)솔직히 너무 딱딱하지 않나? 지난해 해설을 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원래 야구중계는 재미있어야 한다. 사실 내가 해설을 딱 1년만 하고 중단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시청자들이 식상해 할까’ 싶어서였다. 좋은 이야기도 반복되면 지루한 법이다. 시즌이 끝날 때쯤 되니까 ‘내가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방송계에 남는 대신 히어로즈 창단 때 수석코치로 현장에 복귀한 것이다.

이론도 이론이지만 야구계를 직접화법으로 비판하는 당신을 보고 놀란 이들도 많다.

여러 가지 의도가 깔려 있었다. ‘여러분들이 내말을 듣고 필요하면 받아들이고 필요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는 일종의 자신감도 있었고, 야구계 전체를 생각하는 계산되지 않은 충성심도 강했다. 솔직히 야구이론과 관련해 누구라도 찾아와 “이 위원님, 해설 잘 들었는데 그 문제에 관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자, 제 생각이 맞지 않습니까”하고 되받아 치기를 바란 것도 사실이다. 왜냐? 난 언제든 “OK, 그건 내가 잘못 말했다”고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아 무척 실망스러웠다.

때론 파격이 저항을 불러오기도 한다. 지난해 당신의 해설을 듣고 시청자는 좋았을지 몰라도 많은 현장 야구인들은 불만을 터트렸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알고 있다. 나 역시 상당히 힘들었다. 어떤 코치들은 “해설가가 현장 영역을 침범해서야 되겠느냐”,“어째서 당신이 외부에서 ‘감 놔라’ ‘배놔라’ 하느냐”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코치들 영역을 침범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목소리에 힘을 주며)만약 그분들이 자신들의 야구관에 자신이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다.

당신의 예측해설은 적중률이 무척 높다.

야구의 묘미는 역시 투수와 포수 사이에 이뤄지는 사인교환이다. 내 현역시절엔 지금처럼 컴퓨터, 인터넷은 있지도 않았다. 그땐 직접 눈으로 보고 대뇌에 경험을 축적하지 않으면 상대 선수들을 파악할 수 없었다. 내 경우 상대 선수들의 타구방향을 파악하기 위해 해태에 있던 13년 동안 언제나 백스톱 뒤

10년 전 1998년 삼성에서 현역 은퇴했다. 그 뒤 삼성 작전, 주루코치로 2년간 활약했다.

내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고향(광주)에서 한 번도 지도자를 하지 못했다. 이유가 있다. 해태 시절 줄곧 배움에 허기를 느꼈다. 야구를 좀 더 넓게 보고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1995년 해태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결국 1997시즌을 마치고 이듬해 삼성으로 옮긴 뒤 2년간 그곳에서 야구 공부를 했다.

삼성 코치로 1999, 2000년 활동한 뒤 2001년 LG코치로 갔다. 그즈음 KIA에서도 코치 제의를 한 것으로 아는데.

그쪽(KIA)에서 영입의사를 밝혔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당시 김성한 선배가 막 KIA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다. 알고 보니 코칭스태프 조각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김 감독님께 부담이 되는 게 싫었고 ‘지금은 고향에 돌아갈 때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LG에서도 콜이 와 서울행을 택했다. 당시 LG는 한국야구계에서 가장 먼저 선진야구를 접한 곳이라 욕심이 났다.

그러다 2003년 10월 22일 LG 7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혼잣말을 하듯)LG 감독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경험이었다.

LG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광환 감독 후임으로 전격 발탁됐는데. 당시 아무 연고가 없는 LG에 그것도 작전 주루·코치가 감독이 돼 조용한 화제가 됐다.

코치로 있을 때 당시 선수들과 통하는 게 많았다. 아마도 그걸 고 유성민 LG 단장이 좋게 본 것 같다. 음, 보자. (기억을 더듬다가)2003년 마무리 캠프를 호주로 갔을 때지 싶다. 유 단장이 내게 “감독을 맡으면 어떻게 팀을 이끌 것이냐” “팀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무슨 감(感이)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손을 흔들며)아무 감도 오지 않았다(웃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있는데 서울(구단)에서 “급히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때는 감이 왔나.

조금 들긴 했지만 감독 제의를 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혼잣말로)그렇게 감독이 되는 게 아니었다. 냉철하게 팀을 판단하고 역시 냉정하게 선수를 기용했어야 했는데…. 코치를 하다가 갑자기 감독이 되다보니 막연하게 ‘이런 식으로 감독을 하자’는 생각만 있었지 총체적인 마스터플랜이 없었다.

LG에서 3년 계약이라는 초보감독치고는 후한 조건을 제시했다. 3년이라면 성적 압박에서 다소 여유로운 시간인데.

그래서 첫해 목표를 ‘4위안에 들자’로 잡았다. 팀도 그걸 원했고. 하지만 구단은 내심 당시 ‘LG 선수들이 좋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4강 이상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감독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욕을 먹게 마련이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이상훈 문제가 불거지면서 조금씩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상훈 문제와 관련돼 당신의 입장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때 오해를 숱하게 받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까지 당신이 말한 것처럼 가슴에 묻어두고만 있었다. 어쨌거나 이상훈은 내 야구후배이자 제자 아닌가. 이젠 (이)상훈이도 야구계를 떠나 건실하게 살고 있고….

이상훈의 기타연주가 불화의 시작이었는데.

내가 코치 때까지만 해도 (이)상훈이가 기타를 치는지 잘 몰랐다. 감독이 되고 얼마 있다가 코치들이 건의를 했다.

어떤 건의였나.

“상훈이가 스프링캠프에 가서 기타를 치니까 같이 방을 쓰는 선수들이 불편해 한다”고. “정규시즌 때도 보직이 마무리다 보니까 라커룸에서 기타연습을 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했다. 듣고 보니까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모 코치한테 “팀원이 다함께 있는 공간에서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건 옳지 않다. 집에 가서 (기타)연습하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나. ‘앞으로 스프링캠프나 라커룸에선 기타 연습을 하지 마라’고 전하라”고 했다.

이상훈이 수긍했나.

아니다. 모 코치가 갔다 오더니 “상훈이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럴 거면 아예 트레이드 시켜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아니 감독이 요청하는데 그렇게 나오는 이유가 단순히 기타 못 치게 해서 그런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이걸 들어주면 나중에 머리까지 깎으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발끈했단다.

오해가 있던 것 같은데.

(고개를 끄덕이며)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런 게 아니다. 팀과 동료를 위해 조금 양보했으면 하는 것뿐이다”하고 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그러고 나서 도미니카로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러 떠났다.

이상훈의 반응은 어땠나. 변화가 있었나.

당시 괌에서 몇몇 선수들이 재활을 하고 있어 귀국길에 잠시 들렀다. 거기서 모 코치를 만나 상훈이의 반응을 물었다. “상훈이가 감독님 말씀을 못 듣겠다는데요”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허허, 명색이 감독인데 감독 말을 듣지 않겠다고 하니 참…. 내가 기타를 아예 못 치게 한 것도 아니고 스프링캠프나 라커룸에서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니 자제해달라고 한 게 그렇게 무리한 부탁이었나 싶었다. 감독 말을 못 듣겠다는 것 역시 나하고는 같이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나.

이전까지 이상훈과의 관계는 어땠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

코치를 통할 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했으면 오해의 간극을 좁혔을 텐데.

감독은 정식 루트를 밟아 선수단을 이끌어야 한다. 엄연히 투수코치가 있었으니까. 그 친구를 통해 내 생각을 선수에게 전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상훈의 트레이드 요구에 고민이 많았을 법 하다.

트레이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다시 코치가 가서 이야기를 잘 하라”고 전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이 문제와 관련돼 구단과 협의를 했을 듯싶다.

구단에 “감독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선수가 못 듣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구단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면서 입장을 정리했다.

당시 이상훈이 LG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내·외적으로 무척 컸다.

팀의 리더이고 카리스마도 남달라 좋아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선수들도 자기들을 대신해 구단과 맞서 싸워주는 선배로 따르고 있었고. 나 역시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던 친구라, 그런 일들이 터진 뒤 팀을 떠날 때 무척 안타까웠다.

LG 프랜차이즈 유격수 유지현의 은퇴도 모양새는 좋지 않았다.

당시 (유)지현이가 수비, 공격 모두 좋지 않은 상태였다. 오죽했으면 많은 야구관계자들이 “이즈음에서 유지현을 2선에서 쉬게 하는 것이 좋다”고 강권할 정도였다. 마침 성남고 출신의 박경수가 입단하면서 조금씩 (유)지현이가 뛰는 시간이 줄고 있었다. 그러다보니까 스스로 (은퇴)결심을 하게 된 거다. 당시 LG의 세대교체 바람에 본의 아니게 내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상훈이나 유지현이나 그것이 세대교체의 일환이었다면 더 세련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감독 경험이 일천하다보니 미숙함이 많았다. 경험 많은 감독이었다면 순리대로, 혹은 언론을 상대로 노련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을 텐데 사실 미처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구단도 팀이 성적내기만을 바랐지 감독을 어떻게 보호해줘야 하느냐라는 생각은 할 입장이 못 됐다.

이후 이상훈과 대화를 나눠봤나.

없었다. 우연하게 그라운드에서 보면 인사나 나눌 뿐이었다.

많은 LG팬들은 이 선수들이 떠난 뒤 LG가 추락했다고 믿고 있다.

글쎄, 그것보단 1차나 2차 상위 지명자들이 주전급으로 성장했으면 이렇게까지 참담하진 않았을 거라고 본다. 두산을 보라. 김현수, 오재원 같은 선수들이 얼마나 팀에 큰 보탬이 되나. 얼마 전 뉴스를 보니까 2006년 2차 1지명으로 입단했던 투수 신창호가 방출됐다고 나왔다. 입단 3년 만에 2차 1지명자를 내보낸다는 게 무슨 의미이겠나.

어째서 LG 유망주들은 성장하지 못하는 걸까.

구단이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뽑았다고 뽑았지만 안목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선수를 잘 키우지 못한 현장의 탓도 있을 수 있겠고.

전통적으로 LG 선수들은 ‘팀워크 부재’와 ‘구장 밖에서 열심’이라는 인상이 진하다. 물론 ‘LG 선수들을 수도사로 구성해도 뒷말이 나올 것’이라는 농담도 있다.

서울은 지방과 다르다.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할 수 있고 사소한 일도 부풀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선수단과 관련해 그런 이야기는 보고받은 바도 직접 본 적도 없다. LG 선수들은 ‘서울’이란 특수한 환경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나는 별로 선수들 사생활을 터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가능한 코치와 선수들에게 맡기고 난 중간에 간단한 지시만 내렸다. 내 스스로 간섭받는 걸 워낙 싫어하는 체질이라 누구를 간섭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앞에서도 말했듯 내 야구철학을 선수들에게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대 외국인 선수와 가장 궁합이 맞지 않았던 감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픈 데를 찌르네(웃음). LG 스카우트들이 준비한 데이터를 갖고 내가 직접 현지로 날아가 선택했으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현지에서 좋았던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만 오면 죄다 아프다는 거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도 영문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건 도미니카 선수는 절대 뽑아선 안 된다는 거다.

도미니카 선수를 절대 뽑아선 안 된다라.

그 친구들 대다수가 그렇다. 시즌 초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말로는 “아프다”고 하면서 쉽게 포기를 하고 만다. 아프다는데 별 수 있나. 집에 가야지. 반면 미국출신 선수들은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스타일이다.

가장 답답했던 외국인 선수가 누구인가.

(기다렸다는 듯)아이바다. 마무리로 쓰려고 데려왔더니 1군에서 공 한 개 던지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이바를 선택한 건 다른 이도 아닌 바로 당신이었다.

나 혼자 아이바를 뽑았으면 말도 안 한다. 당시 스카우트팀, 나, 차명석 코치가 함께 도미니카를 갔다. 거기서 마침 펠릭스 호세를 보러 온 롯데 스카우트를 만났다. 그 친구에게 아이바에 대해 물었더니 “호세만 아니면 저 친구(아이바)를 뽑아 우리팀 마무리로 쓰겠다고”고 할 정도로 공이 좋았다. (한숨을 쉬며)그러면 뭐하나. 시범경기에서 공 19개, (더 크게 한숨을 내쉬며)내가 지금도 아이바가 던진 투구수 19개를 기억하고 산다. 고작 그거 던지고 어깨가 아프다고 하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LG는 유망주도 유망주지만 외국인 선수 복도 참 없었다.

운이 없던 게지. 현지 에이전트가 선수를 잘못 소개했을 수도 있고….

LG 감독 재임 기간 중 그래도 성공한 외국인 선수를 꼽는다면.

성공? (강한 어조로)한 명도 없었다.

여기다 설상가상으로 트레이드나 FA영입도 운이 없었다.

운이라, 그것보다는 당장 성적을 내기 위해 장기적 비전보단 부족한 인원을 채우는 수준으로 트레이드를 진행한 게 문제였지 싶다.

LG의 외부영입 잔혹사는 2001년 홍현우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홍)현우가 LG와 계약하기 전까지 몰랐는데 영입된 뒤 보니까 무릎이 좋지 않아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뭐랄까. 그 생기발랄하고 뛰어났던 선수가 너무 늙어 있었다. 사실 홍현우는 내가 영입한 케이스가 아니라 말하기 좀 그렇다.

LG 감독 재임 당시 기억나는 트레이드나 FA영입이 있나.

진필중, 마해영 음, 이용규도 있었고.

이용규는 LG가 제시한 트레이드 카드 3명(이용규, 이대형, 오태근)가운데 KIA가 잘 뽑았다고 봐야 한다. 당신과 관계된 실질적인 선수는 진필중과 마해영이었다. 2003년 11월 당시 FA신분이었던 진필중을 영입했는데.

내가 먼저 구단에 요청했고 고 유성민 단장이 ‘OK’를 했다. KIA에서 뛰는 걸 봤는데 괜찮아보였다. 그런데 막상 영입하고 보니까 성적은 둘째 치고 일단은 공격적인 투구를 전혀 하지 못했다. 사람은 역시 겉에서 보면 잘 모른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진필중과 대화는 나눠봤나.

감독실에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누고 내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앞에서는 이해하는 것 같은데 돌아서고 나면 달라지는 게 별로 없었다.

진필중의 LG 입단 첫해 2004년 성적은 4패 15세이브 평균자책 5.23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좋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그해 34경기에 출전했다. 꾸준히 출전시킨 배경이 있나.

(마무리감이) 없으니까 해야지.

2005년 11월 KIA에서 뛰고 있던 마해영을 데려왔다.

2006시즌을 준비하며 외국인 선수 2명을 아이바, 텔레마코 투수로만 뽑았다. 당연히 타자가 필요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는 과정에 의외로 KIA가 “마해영 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마해영과 감독 사이가 틀어진 모양이었다. 그런 연유로 LG 투수 장문석, 손상정, 내야수 한규식과 KIA 내야수 마해영, 서동욱, 투수 최상덕을 3-3으로 묶어 트레이드를 실행했다.

하지만 마해영의 성적은 기대 밖이었다.

보통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면 그해는 반짝하게 마련이다. 나도 현역시절 삼성으로 가서 정말 1년은 반짝했다. 그런데 마해영은 그게 안 됐다.

결국 마해영 영입 역시 실패로 끝이 났는데.

그래도 내가 감독할 때는 많이 기용한 편이다. (씁쓸하게 웃으며)나 그만두고 완전히 허당이 되지 않았나.

2004~2006년 LG 구단 운영을 두고 “투자를 많이 했다”는 측과 “그렇지 않았다”는 평가가 갈린다.

LG처럼 구단에 신경을 많이 써주는 그룹도 드물다. 다만 당시 LG 구단의 모토는 확실히 ‘있는 선수들 키워 쓰자’였다. 어느 면에선 지나치게 자기팀 선수들에 대해 프라이드가 강했다.

LG 감독 시절 코칭스태프와 문제가 있던 것으로 안다.

코치로 삼성, LG에 있으면서 나는 정말 내가 모시는 감독을 위해 모든 걸 바쳤다. 내가 감독이 됐을 때 다른 코치들도 ‘그렇게 하겠지’예상했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다 같은가. 어쩌면 코치들이 도와주지 않았다기보다 내 야구철학을 그 코치들이 다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까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했고….

어느 야구인은 당신이 LG 시절 “기존 코치진의 대대적 물갈이를 했어야한다”고 아쉬워했다.

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은 코치들도 내 사람 아닌가. 그들이 감독의 야구철학을 알도록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감독의 야구철학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선수들이 ‘아, 우리 감독의 야구철학은 이런 것이구나’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야구철학은 무엇인가.

선수들이 감독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라운드에 나가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플레이하는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과정이 좋으면 결과는 언젠가 좋아지게 마련이다. 음, LG 때는 내 생각이 잘 전달되지 않아 (선수들이)과정을 두려워하면서 야구를 했다. 결국 나만의 색깔을 내기도 전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항간에는 당시 단장과 엇박자로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 단장은 내가 추천해 단장직에 오른 이였다. 그분의 야구관이 뭔지는 잘 몰라도 내 등에 여러 번 비수를 꽂았다. 그 때문에 삶의 비애를 많이 느꼈다.

단장과 감독 사이에 문제라도 있었나.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자기를 단장으로 추천한 걸 알고 있었으니까. 팀 성적이 좋지 않다보니까 내가 그만 둔 것이고 단장이 원하는 이를 감독으로 영입한 것뿐이다.

2006년 6월 5일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LG 감독에서 사퇴했다. 당신의 사퇴 전후로 말들이 많았고 몇 년이 흐른 뒤에도 당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나는 ‘진실은 영원하다’는 말을 믿는다. 물론 내가 감독을 맡으면서 시행착오와 잘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일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온갖 비난과 억측을 죄다 뒤집어쓸 정도로 무식하게 일했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2000년 들어 삼성과 SK가 나란히 한국시리즈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야구전문가들이 꼽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가장 강력했던 팀은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다. 과거 해태가 강팀이 될 수 있던 배경은 무엇인가.

(단호한 음성으로)헝그리 정신이다. 야구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정신이 어느 선수나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따라서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노력했고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지금이야 각 팀마다 전력분석요원이 있지만 내가 현역으로 뛸 때만 해도 그런 게 어디 있나. (조용한 목소리로)순전히 자기 노력과 감각을 믿고 의지했지. 워낙 아마추어 야구 시절부터 뛰어났던 선수들이 팀에 많았던 것도 강팀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특히나 해태는 단기전에 무척 강했다.

단기전은 선수들이 ‘야구를 알고 플레이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뀐다. 해태 선수들은 전자였다.

같은 타이거즈다. 어째서 KIA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걸까.

(자세를 고치며)과거 타이거즈 선배들이 만든 전통을 지금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선배들이 만든 전통이라, 그게 무엇인가.

환경을 탓하지 않고 뭐든 하고자 했던 정신력, 구단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야구를 찾아했던 자율성, 이 모든 것이 합쳐 탄생한 타이거즈 특유의 감성의 야구다. KIA는 과거 해태의 ‘감성의 야구’를 빨리 되찾아야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다.

감성의 야구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글쎄, 그건 구단에 계신 분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웃음). 내가 이래라 저래라 말할 문제가 아니다.

해태 OB(Old Boy)로서 덕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야기를 하면 KIA 코칭스태프가 오해하지 않겠나(웃음). 가정이니까 곡해하지 않고 들어준다면 일단 난 과거 우리들이 그랬듯 그라운드에선 선수 본인들의 감각대로 마음껏 플레이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정만 생각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신경 써야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들 몸에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가 베일 것이다.

아, 앞에서 말한 해외 연수는 어떤 차원에서 가는 건가.

한 번 더 (감독에)도전하고 싶다. LG에서는 내 야구철학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때문에 지금도 후회가 되고 항상 가슴 한편에 묵직한 뭔가가 자리 잡은 느낌이다.

가정이다. 만약 다시 감독이 된다면 어떤 야구를 펼치고 싶은가.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투수쪽에 신경을 많이 쓸 것 같다.

투수중심의 야구라면 삼성의 ‘지키는 야구’와 선발을 중시하는 롯데 야구가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LG 시절 강한 마무리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선발은 어떻게든 만들겠지만 뒤쪽은 그렇지 않다. 일단 강한 마무리를 두고 중간계투진을 구축한 뒤 선발진을 갖출 것이다.

지금도 ‘이순철’하면 해태 시절 ‘무서운 고참’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런 오해가 많은데. (입맛을 다시며)사람의 권위는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고 주위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이를 함부로 대하거나 욕을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난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생활해야 주변으로부터 욕먹지 않고 정당한 존경을 받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현역시절 언행을 똑바로 하고 성적도 내면서 후배들에게 훌륭한 선배로 비춰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가. 나와 후배들 관계는 늘 어려우면서 가까운 사이였다. 지금도 그렇고. 기자들이 기사에서 날 가리켜 ‘군기반장’이렇게 쓰다보니까 오해를 산거다. 정말이다(웃음).


이름 : 이순철(李順喆)
생년월일 : 1961년 04월 18일
이력 : 광주상고-연세대-해태-삼성-삼성 코치-LG 코치-LG 감독
프로입단 : 1985년
감독데뷔 : 2004년
프로 통산 성적 : 통산 타율 2할6푼2리 145홈런 612타점 371도루
감독 통산 성적 : 통산 129승 6무 170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