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깔려 있는 열차 선로는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규격이 달라서
스페인 국경을 통과할 때는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간혹 빠리와 바르셀로나를 연결하는 호텔트레인 같은 경우는
열차 운행 도중 국경에서 열차가 신발을 갈아신듯, 바퀴를 바꿔달고 그대로 달리기도 한단다.







니스에서 바르셀로나를 연결하는 야간열차를 타면서,
여느 야간열차와 마찬가지로 간이침대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가 깨어나기만 하면
바르셀로나 시가지가 눈 앞에 펼쳐질 줄 알았다.
야간열차의 장점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자고 일어나보니 딴 세상이더라"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포트부port-bu에서 내려 바르셀로나까지
세시간 가량 걸리는 완행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그 기차가 이른 새벽부터 과도하게 에어컨을 틀어 제껴 반바지에 티셔츠 한장 달랑 입고 있는 내가
세시간동안 벌벌 떨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경험상 야간열차를 이용한 다음날은 편안하게 잠자지 못한 탓에
체력이 평소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진다.
더군다나 오늘은 덤으로 세시간 동안씩이나 멍하게 앉아 원치도 않은 에어컨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에서라면, 서울에서 구미까지가 기차로 세시간 약간 더 걸리는 거리인데..
그 정도 오가는 일만 해도 꽤나 피곤한데..
평소처럼 시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활보할 자신이 없다.







예약해둔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향한 곳은 바르셀로나 시내가 아니라
근교에 있는 암벽 위의 대수도원. 몬세라뜨 Monserrat였다.








이런 울퉁불퉁한 절벽 꼭대기에 11세기에 지어진 커다란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다.










이 몬세라뜨를 대표하는 것은 수도원을 지으면서 발견된 검은 성모마리아상이다.
자애, 포용, 순수, 순결을 상징하는 성모마리아를 검은색으로 만든데에는 참 무시무시한 뒷 이야기가 있다.
성경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초기 성서의 사본격이라 할 수 있는 사해문서의 일부내용을 고생고생 해 가며 찾은 이야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로, 성모마리아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구세주가 될 두번째 아이를 낳았댄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계시를 내린자는 하느님이 아니라 악마계의 서열 2위인 대 제사장 벨제부르였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낳은 성모마리아가 이번에는 악마의 아들을 낳은 것이다.
크리스트교라는 종교 자체가 발칵 뒤집힐만한 내용이니 교단에서도 쉬쉬하며 감출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마리아의 그 두번째 아들의 이름이 바로 디아블로이고, 디아블로를 섬기는
블리자드 교단에서 만들어 모신것이 이 검은 성모마리아라 한다.

































아아, 완벽한 거짓말이다. 벨제부르는 개뿔.. 미안합니다...
가이드북에서도, 현지 안내판에서도 이 성모마리아상이
왜 하필이면 검은 색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혼자 이렇게 멋대로 상상하고 놀았다.
내가 지어놓고도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결국에는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나부터 헷갈리게 되었다.


흠. 그냥, 솔직히 말해서 꼭 이렇게 한번 써보고 싶었다.







성모상이 검은 진짜 이유는 참 재미가 없다.
원래는 검지 않았었는데,
신도들이 성모마리아를 기리며 피운 촛불덕에 그을러서 검게 변했단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수도원을 다 부수고 있을 때도 신도들이 이 성모상만은 지켜냈다고 하는데,
살짝 감동적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역시 재미는 없다.












오늘도 신자들은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녀중의 성녀 마리아에게 거룩한 표정으로 촛불 봉헌을 하고 있다.
나도 저 여러가지 고운빛깔의 촛불을 한을 바쳐 보고 싶지만,
카톨릭교도도 아니면서 저 초를 만지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일것 같아 그만둔다.
나라도 '저게 검은 이유가 사실 성모마리아가 두번째 아이를 낳았었는데 말이지~'
하면서 소설이나 써대는 작자의 봉헌은 별로 받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시내로 돌아온 것은 해가 서쪽하늘에 걸쳐 석양이 질 무렵이었다.
풍경사진을 찍기에는, 빛줄기가 부드럽고 따뜻해지는 새벽녘과 저녁시간대가 가장 좋다.
물론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이나 혹은 어스름한 달빛조차 없는 야간도
나름대로의 매력들은 가지고 있지만 특히 석양이 깔릴 무렵의 풍경들은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천성이 심야형 인간이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인 내게 새벽사진이란 없다.
내가 제대로 된 풍경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저녁때 뿐이다.
오늘 따라 뭔가 제대로 된 한컷을 찍으리라는 확신에 차, 바르셀로나의 스페인광장으로 향한다.






















까딸루냐 국립 미술관 앞의 분수대는 밤에 열리는 화려한 분수쇼로 유명하지만,
나는 분수쇼보다 훨씬 더 멋진,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석양이 잔잔히 깔린 광장을 내려다 보며 앉아 사랑하는 이와의 키스.






셔터를 누르는 내 손이 다 후들후들 떨릴 지경이다.
부럽다. 부럽다.
지독하게 부러워서 손만이 아니라 온 몸이 다 떨리고 있다...
















찰나의 바르셀로나.
1만여장의 셔터질 중 정말로 마음에 드는 단 한 컷.





























싸그라다빠밀리아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바르셀로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건축가 가우디여야 한다.
아무리 축구를 좋아하더라도 뜬금 없이 '호나우딩요! FC바르셀로나!' 이러면 안된다.
무조건 천재 가우디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려야만 한다.














여태까지의 일정동안, 실제로 보면서 전해져 오는 느낌을
내 어줍잖은 사진 실력으로는 전혀 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딱 세가지 있다.




첫번째는 벌써 몇번을 칭찬하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웅장한 풍경.
넓으니 화면에 들어오지도 않고, 광각렌즈로 억지로 주워 담아봐야 실제 같은 느낌도 나지 않는다.




두번째는 나폴리 다미쉘의 마르게리따 피자다.
당연하다. 내가 무슨 대단한 광고 사진작가도 아니고 피자의 맛을 카메라로 표현해 낼 도리가 없다.
다미쉘은, 먹어야 다미쉘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한계를 느낀 곳이 바로 이 싸그라다빠밀리아다.
여행을 준비하던 시기부터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몇번이고 보아온 곳이지만,
'뭐, 그냥 좀 별나게 생긴 성당이네. 아직 미완성이라고? 언제 완공될지도 모른다고? 이런게 무슨..'
하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하철 출구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이 점점 벌어진다.
유럽에 있는 유명한 성당 치고는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보이는것 외에 바람이라든지 향기라든지 하는
부수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사진으로는 이 분위기를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처음 공사를 맡게 되고 나서는 설계도를 종이에 그리는게 아니라
희한하게도 방 천장에 실들을 여러갈래로 연결해놓고 추를 달아 늘어뜨려서
그 뒤집어진 모습대을 스케치 해나가며 지었다는 가우디 이사람, 이 사람은 천재 맞다.
탄생의 문이 어쩌니 직선을 배제하고 자연모습을 본딴 건축이니 저쩌니 하면서
치장을 하는 것도 가우디에게 좀 미안해진다.
이런건 말로 설명하면 안되고, 그냥 봐야 한다.




















미완성이기에 더욱 아름답다는 말에는 찬동할 수 없다.








기부금만으로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완공을 위해서는 앞으로 100년이 걸릴거라는식의 이야기는 억지 같다.
위대한 건축물을 위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느림의 미학 같은걸 모르는 내 생각은 그렇다.
가우디도 그렇고 그 제자들도 그렇고 결국에는 제한된 시간을 사는 인간인데,
미리 계획한대로 깔끔하게 일처리를 한다면야 21세기에 이런 성당 하나쯤 뚝딱 만들어내는게 일도 아닐것 같다.
성당 입장료와 문들에 설치된 엘레베이터 사용료 수익만 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일텐데
그 돈으로 공사 안하고 다 누구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가우디가 죽게 된 사고라는게 '트램에 치여서'이다.
트램은 지하철이나 기차와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개념은 전혀 다르다.
육상의 도로를 느릿느릿 움직이는 교통정체의 주범에게
별로 늙지도 않은 성인 남자가 치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그 느린트램에 치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뭔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외국인인 내가 주워들은 단순한 전후관계만으로도 영 수상쩍다.
가우디가 싸그라다빠밀리아를 건축하며 모종의 외압에 시달리지는 않았는지,
구엘공원을 만들다 말고 싸그라다빠밀리아에 매진함으로써
자신의 재정적 지원자인 구엘과의 사이가 틀어진것은 아닌지,
바르셀로나판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TV프로그램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데
나로서는 더 파고들 수가 없다.
나는 탐정이 아니다.
여기저기 발에 땀나도록 돌아다니면서 사진찍기도 바쁜 사람이다.





가우디의 의문사 진상규명은 까딸루냐 친구들에게 맡기고,
다시 사진이나 찍으러, 운명의 구엘공원으로 향한다.




[이 게시물은 ▶◀ dr.레인님에 의해 2009-04-19 16:30:33 불펜 게시판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