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유럽 2006] 제 30탄. 할슈타트 : 나는 자연인이다.
수능 언어영역 지문 중에, 동양과 서양간의 관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폭포와 분수를 예로 든 지문이 있었다.
내용을 간추리자면, 서양에서는 분수를 만들어 중력, 즉 자연의 힘을 거스르려고만 하는 반면에
동양은 폭포를 가까이 하면서 자연의 힘에 순응하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니
결론적으로 우리 사는 동양이 더 잘났다는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서양에서 바람을 이용하여 풍차를 만들고, 풍차가 증기기관이 되고,
증기기관으로 기차를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전화를 발명한 것은
자연의 힘을 거스르려 했다기 보다는, 자연을 십분 활용하고자 하는 경험과 지혜를 우려낸게 아닐까 했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한 일이라고는
고작 물레방아로 곡식 찧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나.
하지만 그 지문은 민족의 자긍심을 위하야 서양인들을 파괴자로 단정지어버렸다.
서양이 그렇게 자연을 정복하는 동안, 선조들이 자연을 그대로 두었던 것은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만 주장하고 있었다.
수험생 시절에는 그런 지문을 보고 무조건 맞는 말인가 보다 하면서 끄덕끄덕거려야만 했지만,
수능을 친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지금,
오스트리아의 금강산 계곡이라 할 수 있는 짤즈감머굿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타면서 보니
그 글이 과연 수긍할만한 내용이었는지 하는 의심이 더욱 도지기 시작한다. 
호수를 끼고 달리던 기차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걸어 가니,
호수 건너편의 마을에서 출발한 보트가 기차 시간에 맞춰 도착한다.
보트 안에서 바라보는 할슈타트가 점점 가까워 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도 커져온다. 어쩜 이런 그림 같은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얼굴도 예쁘고 정도 많을 것 같다.
이런데서 사는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처럼 서로 헐뜯고 속이고 미워하는 일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문근영은 절대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고향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멍청한 녀석의 심경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할슈타트에는 또 석기시대부터 암염을 캐어온 소금광산이 있다.
더 이상은 이곳에서 소금을 캐지 않지만,
할 일을 다 한 소금광산은 이제 관광자원이 되어 마을을 찾은이들에게 쏠쏠한 볼거리가 되어주고 있다.
가이드투어를 받으러 들어가기 전, 광부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어느 정도 광부가 된 듯한 분위기가 난다.
굳이 이런 것을 입히는데는, 그런 연유 말고도,
여름 옷으로는 사시사철 비슷한 온도인 광산 안에서 한기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일거고,
옷에 소금기가 묻으면 곤란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광산 내부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 갈 때 잘 미끄러지라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경사로에다가 나무 미끄럼틀을 만들어서,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다가,
가이드 투어가 끝날 때쯤 벌써 인화를 마친 사진을 판매 하려고 내 놓는 것이야 말로
그야말로 전형적인 서양의 방식 같다. 돈을 버는 방법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가이드는 소금광산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암염이 생성되는 과정을 나타내는 모형을 돌리는가 하면 광부인형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빔프로젝터로 그림을 보여 주며 사람들을 광산의 모습에 집중시킨다.
마지막으로 선로 위의 꼬마기차를 타고 광산 깊은 곳에서 지상으로 빠져 나올 때쯤에는
내가 소금광산에 대해 모르는게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될 지경이다.
광산이라고 하니 또 어린시절을 보낸 광산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쯤 전, ‘내가 당선이 되면 광부들 임금을 두배로 올려주겠다.’
라고 공언하며 표를 호소하던 어느 대통령 후보가 한 명 있었다.
그 ‘보통사람’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석탄가격합리화정책’이라는 것을 내세워,
값싼 중국산 석탄을 산더미처럼 수입해 오는 한편 인건비가 많이 드는
국내의 석탄광산은 죄다 문을 닫게 해 광부들을 실업자로 만들고 탄광촌을 버림받은 마을로 만들어 버렸다.
채산성이 맞지 않는 탄광을 폐쇄 하는 것이 넓게 본다면 지당한 국가 정책이긴 한데,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은 그렇다치고 문제는 버려진 탄광이다.
‘우리도 할슈타트의 소금광산처럼 관광자원으로 잘 꾸며놓으면 될텐데’ 하는 생각은
상식선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폐탄광촌을 관광자원으로 꾸미지 않은 것도 아니다.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 좋은 무연탄을 캐내던
‘은성광업소’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실제로 ‘석탄박물관’이라는 것이 지어졌고,
예전에 석탄을 실어나르던 산업철도는 서울과 바로 연결되는
관광용 철도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거기가 바로 내가 자란 곳이니까.
광산 앞에 지어놓은 박물관이라는 게 호텔인지 온천장인지
도저히 광산과의 연관성을 떠올릴 수가 없는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이고,
관광열차라는 것은 그나마 정기적으로 다니지도 않다가 생긴지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진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주변 경관이 사실 아주 빼어난 편은 아니지만, 공기 좋고 물 맑고, 산이 깊고 나무가 많은 곳이며,
광산의 규모로만 보자면 이곳 할슈타트보다 훨씬 더 큰 곳인데.
만약 할슈타트 같은 곳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우리가 했을 일이야 안 봐도 비디오다.
반경 10Km이내의 도로변에는 시뻘건 간판을 내건 식당과 모텔들이 즐비했을 것이고,
매표소 바로 앞에는 온갖 중국산 기념품들을 파는 기념품점,
파전에 동동주를 파는 주점들로 어지러웠을거다.
전국 어디를 가든 똑같은 풍경이다. 뻔하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것도 안타깝지만,
요즘은 자연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여기 알프스 자락 사람들은 자연을 별로 훼손하지도 않고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주어진 자연을 최대한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러면서도 관광객은 관광객대로 또 한참 끌어 모으고 있지 않나.
우리는 이곳처럼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수입을 올리며
그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 할 수는 없었던 걸까. 
30여년만에 국민소득이 몇백배나 올라 버리면 사회 전반적으로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지난 30여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변화가 컸던 시간이었다.
그 커다란 소용돌이의 중심을 헤치고 온 윗세대들에게는,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 보면 도로가 뚫리고, 다음날은 기차 선로가 이어지고,
또 다음날은 건물이 지어져 올라가는 마당에,
뭔가 자연과 삶을 조화시켜 보겠다는 속 편한 고민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짤즈감머굿이 아무리 아름다워 본들, 이런 맑은 물과 공기, 우거진 나무들로만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훨씬 더 낫다.
우리야 매일 봐서 식상하지만, 우리네 백두대간, 세계 어디다 내놔도 그리 꿀릴 것 없다.
다만 아까 말한대로 우리의 점잖은 선조들은 이 강토를 제대로 활용 할 줄 몰랐고,
바로 윗세대들은, 자연의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 이 잘나가는 나라의 강한 친구들이 자연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고 배워 온 젊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자연과 조화시킬 차례인 듯 하다.
문경시 가은읍 석탄박물관의 건립에 관련된 사람들 중,
이 할슈타트 소금광산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곳의 광산과 박물관과 주변의 산천이
그토록 완벽한 부조화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분들은 여유가 없었을 테니깐.
이제, 예전세대들은 절대로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과 고민을 해 본 사람들이
뭔가 나아진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차 강조하지만, 그런 것들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온 것이다.
비행기표는 단순히 돈만 비싼게 아니다.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