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남부 긴 장화모양의 반도 국가, 이탈리아를 아는가.

지난날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로마제국을 건설하여

세계를 지배했던 그들이, 그들이 2000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축구공으로 다시금 전 세계를 제패 하였다.

느끼하고 시끄럽고 게으르고 거짓말을 잘한다는 안타까움은 좀 있지만

그래도 이탈리아인들은 예술이나 음식, 패션 같은 여러 분야에 비상한 재능이 있다.

단점보다는 그래도 장점이 많은 민족이다.











그리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려는 당신이, 얼마나 이탈리아인, 리딸리아노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설문 응답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행을 하려는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비행기 타기 전부터 이미 절반은 성공한 여행이 되는 셈이다.

당신이 지금 이탈리아 땅에 와 있다고 치고,

아래의 문제들에 성실히 설문에 임해주면 여러모로 재미 있을 것이다. 정말이다.











Q 1. 피렌체에 살고 있는 당신은 시에나에 사는 친구를 방문할 일이 생겼다.

피렌체S.M.N.역에서 시에나로 직행하는 열차는 아주 드물고,

보통은 피사에서 기차를 한번 갈아 타야 한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직행기차를 타기로 하고 약속시간을 맞췄는데, 깜빡 늦잠을 자 버렸다.

지금부터 몹시 서둘러야 간신히 제 시간에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처신할까.







a. 부리나케 뛰어 나간다.

그래도 안타깝게 기차를 못 탄다면 바로 친구에게 연락해서 양해를 구한다.

약속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





b. 늦잠을 잤더라도 아침은 반드시 챙겨 먹어야 건강에 좋다.

길에서 파는 조각피자라도 꼭 사서 먹어 둔다.







c. 어차피 시에나행 직행 열차가 제 시간에 출발 할 리가 절대로 없으니

평소처럼 느긋하게 나가면 된다.

설령 기차를 놓친다고 하더라도 피사를 경유하는 다음차가 있으니 상관 없다.

약속시간이야 두어 시간쯤 늦겠지만

그 정도는 기차가 연착 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특급열차 ESI도 20시간씩 연착되는 경우가 있는데 2시간 쯤이야..










Q 2. 우연한 기회로 이탈리아를 찾은 여행객 한 명과 말을 섞게 되었다.

대화 도중, 당신은 이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서 로마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오면서 택시요금으로 140유로(18만원)나 바가지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a.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장사 하루 이틀 할 생각이냐면서 고약한 택시기사를 욕해 주고,

관광객에게는 조국을 대신해 사과한다.

앞으로는 택시를 탈 때는 미리 예상되는 가격대를 물어 본 다음,

미터기를 예의 주시하라는 충고 또한 아끼지 않는다.





b. 근방의 맛있는 레스토랑을 소개시켜 주면서 친절한 이탈리아인 친구가 되어 준다.

택시기사에게 쓴 돈을 나한테도 조금만 써 보라며 북부 이탈리아의 특미인

크림소스 스파게티를 대접 받는다.





c.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오죽 손님이 없었으면 택시기사가 그렇게까지 했을까.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온 직후부터 친절하고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끈덕지게 달라 붙는

택시 운전기사들을 뿌리치지 못한 그 여행객이 바보다.

나라면, 공항과 로마 떼르미니역을 잇는 직통열차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탈 것이다.

연착이야 좀 되겠지만, 귀찮게 중간에 내려서 지하철을 갈아 탈 일도 없고,

바가지를 쓰는 일도 당하지 않을 테니. 11유로면 뒤집어 쓴다.












Q 3. 이번에는 이 여행객이 트레비 분수를 구경하면서 넋을 놓고 있다가

현금이 가득 든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고 한다.

어떻게 위로 할 것인가.





a. 이 나라의 치안에 대해 함께 격분하고, 마찬가지로 조국을 대신하여 사과 한다.

귀중품은 반드시 복대에 넣어 다니고, 어디서든 손가방이나 카메라 같은

값져 보이는 물건들은 절대로 몸에서 떨어뜨리지 말라고 두번, 세번씩 당부한다.





b. 여행중에 도둑을 맞는 일보다 난처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피자를 사 주면서 위로해 준다.








c. 택시기사의 경우와 비슷하다.

소매치기라고는 하지만 인간으로서 생존할 권리가 있다.

그 사람도 소매치기가 되기까지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이 관광객이 문제다.

누구도 트레비 분수처럼 붐비는 곳에서 정신을 놓고 있으라고 말한 적은 없다.

전적으로 관광객의 탓이다.





다만 이 사람은 지금 몹시 상심해 있을테고, 말 몇 마디 해 주는 일쯤이야

돈이 드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교황 성하를 모시는 카톨릭교도로서

위로의 말을 전달 해 줄 필요는 있다.

가능한 한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가며,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지갑을 되찾는 일은 아주 힘들거라고 다독여준다.

아마도 범인은 이탈리아인이 아니고 보스니아에서 온 전쟁 난민일거라는 말도

반드시 덧붙여 줘야 한다.

관광대국 이탈리아에 돈을 쓰러 오신 소중한 손님이

이탈리아 사람에 대한 좋지 못한 인상을 받으면 안되니까.










Q 4.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모든 도시의 시내버스운전사가 현금으로는 요금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이 시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 직전, 티켓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할까. 아, 그전에, 당신 여자다.





a.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보통 표를 살 수 있는 매표소나 타박(Tabac)이 있으니 얼른 뛰어가서 표를 사 온다.





b. 버스 탈 돈을 아껴서 남부 특선요리인 봉골레 스파게티에 마르게리따 피자 코스를 먹는다.

음료수로는 오리지널 코크가 좋겠다.






c. 세상에는 버스요금보다 중요한 일이 얼마든지 많다. 그냥 버스에 오르면 된다.

사람들은 보나마나 줄도 서지 않고 앞다투어 앞문으로 뛰어들 것이기 때문에,

운전기사는 당신에게 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당신에게 표가 있는지, 없는지 자체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드물게 검표원이 불시에 들이닥쳐 표 검사를 할 수는 있겠지만,

만일 당신이 절망적인 수준의 박색이 아니라면,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목 놓아 엉엉 울어버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의 로만띡 리딸리아노들은 여자의 눈물 앞에서는 하염 없이 약해지는 존재들이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보내 줄 것이다.









Q 5. 비가 와서 마음이 울적하다.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는 친구에게 모처럼 편지를 써 볼까 한다.





a. 아주 추천하고 싶은 일이다. 전화나 이메일은, 편지와는 기분부터가 다르다.

종이 향기 가득한 편지지에 애정 어린 필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줄 한줄 정성스레 적어 내려가는 편지를,

싸이월드 방명록에 몇줄 찍 갈기는 행위와 같은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b. 편지 따위야 대강 써서 후딱 우체통에 넣어 버리고 피자를 먹으러 간다.

비 내리는 날에는 뭐니뭐니해도 구운 마늘을 듬뿍 넣은 마리나라 피자다.





c. 이 나라의 우체국을 믿을 바에야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비둘기를 믿는 편이

훨씬 더 속 편하다.

이 믿을 수 없는 국책기관을 대신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전화와 팩스,

택배와 E-Mail이다.

로맨티스트인 당신이 죽어도 편지를 써서 보내야겠다면, 그리고 당신이 지금 로마에 있다면,

바티칸시국으로 가서 산삐에뜨로 성당 옆에 있는 바티칸 우체국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탈리아 한 가운데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은

이탈리아와는 또 전혀 달라서, 여기서 보낸 우편물은 정확한 시일 내로 세계 곳곳으로

멀쩡하게 잘 배달된다.



하지만 답장은 절대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편지가 친구에게 제대로 도착하지 않을 우려는 사라졌다 하더라도,

답장이 당신에게 제때 도착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친구에게도 바티칸에서 편지를 보내게 하면 되지 않냐고?

당신, 바보인가?









Q 6. 그 어떤 분야든, 자신의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직업을 고를 것인가.





a. 의사, 약사, 판검사, 선생님, 대통령, 우주 비행사.





b. 어떤 직업이든 상관 없다.

맨날 맨날 피자랑 스파게티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벌 수 있다면.








c. 경찰. 경찰이야 말로 만고땡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경찰이 얼마나 명예로운 직업인지,

거리의 여인들조차도 경찰에게는 반값만 받는단다. (응? 뭐라고?)

번쩍번쩍 빛나는 제복을 갖춰 입고 거리에 나와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질서는 알아서 수호 된다.

길에서 불법 좌판을 벌여서 명품 짝퉁이나 명화 복사본을 팔고 있는

흑인친구들을 단속할 때도, 그냥 멀뚱히 서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한국처럼 공익근무요원 내지는 용역깡패들을 불러다가 포장마차를 때려 부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따금씩 소매치기를 당한 관광객이 울며 불며 찾아와서 난동을 부릴 때가 있는데,

이 사람이 이탈리아말을 전혀 못 하더라도 인내를 갖고 달래주자.

외국어 회화를 연습할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다.

경찰서에서 폴리스리포트를 다 쓴 관광객에게는, 관광산업으로 먹고 사는 조국을 위하야

‘그 소매치기범은 이탈리아인이 아니라 보스니아 난민일거예요’라는 말도 꼭 해 준다.

하지만 경찰의 일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란 참 고역이다.

옆에 서 있는 동료 경찰과 헤어진 여자친구 이야기로 시시덕거리는 재미도 하루 이틀이지,

인내심이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라면 지루해서 죽을지도 모른다.

민중의 지팡이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이런 삶에 무료함을 느낀다면, 그 때는 도둑을 잡으러 가면 된다.

2001년 기준으로 이탈리아의 범죄자 검거율은 25%라는데, (한국은 80%)

관광객을 상대로 한 소매치기 같은 잡범들의 검거율은 이보다 훨씬 더 낮다.

어차피 소매치기들은 죄다 보스니아 난민 출신들이라 잘 먹지 못해서

도망쳐도 금방 잡힐 테니까.

이들을 잡는 일이야 말로 경찰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이고,

스릴감 넘치는 레포츠라는 사실을 다른 경찰들에게도 가르쳐 줘야 한다.











답변 중 a가 가장 많다면

이탈리아 땅에서 그렇게 한국사람이라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캐캐 묵은 충고야 말로

당신 같은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리딸리아노가 되어야지

한국식 사고만으로 똘똘 뭉쳐있다가는 후회 하게 되는 일이 여럿 생길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아 난 댔는데,

이쯤 되면 당신의 입은 물론 똥구멍에도 가시가 수두룩 빽빽 할 듯싶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서점이나 도서관을 살펴보면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에 관한 재미있는 책들이 많이 있다. 제발. 좀.









답변 중 b가 가장 많다면

네이버에다가 ‘이탈리안 피자와 스파게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걸 만들어 볼까 생각중이다.

당신이라면 운영진 내지는 특급회원을 시켜줄 의향이 있다.







답변 중 c가 가장 많다면

물리적으로는 한국땅에 머물고 있을지 몰라도, 당신의 정신 상태는 이미 리딸리아노이다.

게다가, 나는 당신이 대체 왜 여기서 이런 글이나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낭비다.

빨리 가서 콜로세움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스파게티라도 한 가닥 더 먹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게시물은 ▶◀ dr.레인님에 의해 2009-04-17 14:57:04 불펜 게시판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