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이예요.

보통 대관식이라고 하면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교황이 황제에게 왕관을 씌워주는거 거든요.

그런데 나폴레옹은, 자기가 황제니까 자기가 권력 그 자체라고, 남에게 힘을 부여 받는 게 아니라면서

교황한테서 왕관을 뺏아서 자기 손으로 직접 머리에 써요.  







이건 나폴레옹이 왕관을 쓰는 장면이 아니고, 황후 조세핀에게 자기가 직접 왕관을 씌워주는 장면이구요.

조세핀은 나폴레옹보다도 연상이고 이혼녀라서 저 때 나이가 꽤 많았었거든요. 

하지만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저렇게 젊고 예쁜 모습으로 그리라고 시킨거예요.















출처 : 루브르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나폴레옹이 이 대관식 때문에 사람들을 노틀담 성당으로 새벽 6시까지 불러 놓고,

자기는 정작 12시가 다 되어서 도착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사람들 표정들이 다 안 좋아요.

그 중에도 저기 나폴레옹 뒤에 앉아서 오른손을 들고 있는 사람 표정이 특히 안 좋죠.

저 사람이 교황이거든요. 왜냐하면 자기가 내려줘야 할 왕관을 뺐겼으니까 기분이 좋을리가 없죠.

그리고 또 교황이 저 때 몸이 되게 아팠었대요.



교황 옆에 서 있는 추기경이랑, 그림 한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는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저날 참석을 못했었는데

일부러 그려 넣었구요. 참석한 사람 중에는 터키 대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슬람 교도라서,

가톨릭 성당에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게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고 해서 다비드가 뺐어요.

또 다비드 자기 모습도 있는데, 저기 2층 윗부분 맨 왼쪽에서 두번째에 뭔가 막 스케치하고 있는 사람있죠.

저건  화가가 자기 모습을 그린척 트릭을 쓴거구요.

저기 길다란 십자가 든 사람 옆으로 세모난 모자 쓴 사람 있죠?

그 뒤에 있는 키 작은 곱슬머리가 다비즈예요. 저 사람 얼굴이 다비즈 자화상이랑 똑같아요.





그림에 나온 손님들 얼굴이 다 실제랑 똑같아요. 그게 다비드가 천재라서 그런게 아니고,

나폴레옹이 이 대관식 그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기 얼굴 주인공들 한명 한명한테

언제 몇시까지 다비드의 작업실로 가서 모델을 서라는고 명령을 다 내린거예요.



나폴레옹이 쫒겨나고 나서 다비드도 벨기에로 망명가거든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이 그림이랑 똑같은 그림을 하나 더 그렸는데, 그건 지금 베르사유에 있어요.

베르사유에 있는 그림이랑 이 그림이 다른 점은 다 똑같은데,

베르사유에 있는 그림에는 왼쪽에 주르륵 서 있는 나폴레옹 여동생들이랑, 제수씨들 말고도

분홍색 옷 입은 사람을 한 명 더 그려 넣었어요.





그게 누구냐면 다비드가 사랑했던 여인이래요.

베르사유로 가시면 저기서 분홍색 옷 입은 여자를 찾아보시면 될거예요.







저기요 학생? 이분들은 투어 비용을 다 지불하신분이거든요.

옆에서 그렇게 훔쳐들으시면 안돼요."













나 이것 참.. 쪽팔린다.

유모차를 끌고 온 한국인 부부 한쌍에게 눈알을 허옇게 뒤집고 입에는 거품까지 문 채로

열정적인 설명을 하던 가이드는 나 같은 무임승차자에게는 냉정하기만 하다.

나는 뭐라고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멀리 도망쳐 나온다. 쪽팔린다.











누구나처럼 유럽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딴에는 대단히 치밀한 준비를 해 온 터였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미술관에 관련된 책만 족히 열권이 넘게 읽었고,

베르메르와 벨라스케스야 말로 유럽이 낳은 최고의 화가라는 나름대로의 주관도 만들었다.

루브르, 우피치, 바티칸, 쁘라도 같은 무지막지하게 큰 미술관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미술관내 추천 동선도 뽑아왔고, 대표적인 작품들의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MP3도 받아왔다.















책자에서 나온대로 유리피라미드가 아닌 지하철입구를 통해

줄을 거의 서지 않고 루브르로 입장한데까지는 좋았다.

드농관 4호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상'에서부터 '나폴레옹 2세 아파트먼트'에 이르는

완벽한 동선도 있겠거니, 그 때 까지만 해도 루브르가 내 손안에 들어올 줄 알았다.







많고 많은 조각들 중에서 시작점인 '죽어가는 노예상'이 대체 어떤건지 알 도리가 없다.

한글이 없는건 그렇다 치고 영어로 Dying Slave라는 팻말정도는 붙어 있어야지,

순 발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프랑스어로만 작품 이름을 붙여 놓고서

세계 각국의 손님들에게 입장료를 받아 먹고 있다니 괴씸하다.







대관절 이 똘레랑스의 나라에 'L'Esclave mourant' 를 '죽어가는 노예'라고

올바르게 알아보지 못할 사람을 위한 배려가 없단 말인가.

똘레랑스 좋아한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이를 위한 관용이라고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개똥 자존심의 나라 주제에.





















층계가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에서 '니케'가 나오자 함빡 웃음을 짓고

미리 준비해온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MP3를 튼다.







그리스 신화에서 니케는 스틱스와 팔라스의 딸이라는 둥,

니케는 승리의 여신인데, 로마어로는 빅토리아라는둥,

Nike를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나이키가 되는데 그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가 이 니케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둥,

이게 원래 뱃머리장식인데 수백개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붙여서 복원한거라는둥,

오른쪽 팔이 발견된건 나중 일이라는 둥...



































작품을 보는 안목이 없다면 배경지식이라도 갖춰야 한다.

오디오가이드가 없었더라면 '목도 없고 팔도 없는 뭐 이런걸..'이라고 지나쳐 갔을텐데,

다시 보니 농구공을 들고 골대를 향해 뛰어 오르는 마이클조던이 그대로 겹쳐보인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삼미신'을 찾아다니다가 난데 없이 중반쯤에나 나타나야할 밀로의 비너스가 나타나고,

길을 잃게 된 것을 알았지만 뭐 어떠랴는 생각으로 또 다시 MP3를 틀어 희희낙락 거린다.

















'밀로'는 조각가의 이름이 아니라 이 비너스상이 발견된 섬이름이라는 둥.

고전양식과 헬레니즘양식의 조화라는 둥.

사라진 양 팔의 한쪽에는 금사과, 한쪽에는 옷자락을 들고 있을 것으로 추정은 되지만

어떤식으로 복원을 하든 팔이 떨어져 나간 지금의 모습보다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둥.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작품을 본 느낌을 찾을게 아니라 작품을 찾다가 볼일 다 보겠다.

루브르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전시 해 놓은 박물관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쉬지 않고 1초에 한개씩만 봐도 몇주가 걸린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다 진짜다.

확실히, 출발전에 미술책 몇권 휙휙 훑어 본 경력 갖고 덤빌만한 곳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긁어온 빨리 찍기 루트는 그런대로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저질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나폴레옹의 대관식 앞에서 만난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엿듣다가 무안을 당한 것이었다.







다시, 이 방 저방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제아무리 미술에 문외한이더라도, 많고 많은 작품들 중에서

뭔가 특별한 느낌이 오는 작품을 한두개는 발견 할 수 있는데,

나중에 그 작가에 대해 여러가지로 파고들다보면 미술 전반에 대한 흥미가 생긴다고,

미학 교양수업을 진행하시던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었다.

미술작품은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말만 믿고서,

그저 가슴이 반응할만한 그림을 찾아다닌다.













보티첼리 '봄'의 조각판?



















근육덩어리 남자가 히드라, 뱀, 사자, 황소, 멧돼지, 켈베로스 같은 것들이랑

싸우고 있는 모습이 있다면 그건 헤라클레스다.

헤라가 보낸 뱀을 목졸라 죽인 것은 헤라클레스가 아직 갓난아기 때였다던데,

우리의 발육과다 영웅은 벌써부터 얼굴에 저렇게 할아버지 수염이 나 있다.

















인간들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해 술에 취한 나머지 신부를 겁탈하려는 반인반마의 켄타우로스, 에우리티온.

저 '숫컷의 표정' 하며, 신부의 발바닥 굳은살이 접힌 주름까지 묘사 한 것이 참 섬세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친구는 또 다른 인간 여성에게 추근대다

결국 '갓난아기 때 부터 할아버지 수염을 기른 영웅'에게 맞아 죽었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놈은 그냥 쳐 죽여야 한다.























드디어 찾았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의 작품들.

레이스 짜는 여인, 천문학자.

베르니니 하면 떠오르는 잔잔히 부서지는 빛을 어김없이 받고 있는 모델들.

그리고, 도통 떠오르지 않는 느낌.

진귀한 작품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받는 텅 빈듯한 느낌.











한장에 수십억씩 하는 그림들이 밑도 끝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지만,



그 중에서 내 가슴이 반응하는 작품은 찾을 수  없다.

모나리자를 사진을 찍으려고 버둥대는 사람들과 제지하는 직원들을 보니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눈이 있어도 보는게 아니고, 엄청난 작품들과 사람들 사이를 그저 왔다리 갔다리만 하는 바보가 된 느낌이다.

KTX 기술 이전의 떡밥, 우리네 외규장각 책자를 찾아 보려던 계획은 한참 전부터 쑥 들어가 버린 상태다.

루브르엔 대영박물관처럼 한국관이라는 것도 없거니와, 나보다도 영어를 못하는 직원에게 뭔가를

물을 수도 없다. 영어를 잘하는 직원이 있다 하더라도 '외규장각도서'를 뭐라고 어떻게 설명할텐가.





























루브르는 원래 왕궁이었댄다.

루브르의 한 귀퉁이에 '나폴레옹 2세 아파트먼트'가 남아 있어

그 옛적의 호화롭고 화려한 생활을 조금이나마 감상 할 수 있다.

나폴레옹 2세 아파트먼트는 또한, 인터넷이 일러준 동선의 끝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에서 채 네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30만점이 넘는 작품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거라고는 위에서 말한 딱 그 몇점들 뿐이다.

정신이 멍하고 다리가 아프다. 괜히 억울하다.









정말이지 미술관은 치가 떨린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비록 시골에서 크긴 했지만 책도 많이 읽고

대학교도 서울로 가서 촌스러운 사투리를 버리고 서울말도 배웠으니

그럭저럭 교양인이  된 줄로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루브르 앞에서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 버리다니 분하고 원통스럽기까지 하다.

루브르는 그렇게 왔다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