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디에고! 말해봐, 스페인랑 한국이랑 어느나라가 축구 더 잘해?
이건 2002년 기준이야."

"중현! 나는 그 월드컵 이후에 어느 한국 축구선수가 스페인리그에서 실패하고 돌아간걸 알고 있어!
그가 한국에서 제일 잘한다며? 그렇지?"

"이런 망할.. 한국리그에서 실패한 스페인선수가 반드시 한명쯤은 있을거야!!
인터넷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고야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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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형, 개는 우리만 먹는게 아니고 중국사람들도 먹잖아요. 개 먹어 봤죠? 개 먹는게 잘못이에요?
근데 왜 여기 친구들은 한국한테만 시비죠?"

"우리는 개뿐만 아니라 전갈, 지네도 먹어!! 베이징으로 온다면 맛보여줄 수 있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남기면 돈은 자네가 다 내는거야..디에고 자네도 올텐가? 악어랑, 번데기도 있어!!"

"와하하!!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독일 출장중에 짬을 내어 빠리에 들렀다는 중국아저씨 리와,
밀라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여름방학이라 여행 왔다는 스페인친구 디에고.
서로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서로 자기소개를 하다보니 대화에 깊이는 없을지정,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친해지는 것도 금방이다.

여러명이 같은 방을 써야 하는 호스텔이 이래서 좋다.
별 다섯개짜리 특급호텔 스위트룸에 간들, 전혀 다른 나라에서 모인 얼굴도 처음 보는 이들끼리
이렇게 허울 없이 낄낄대며 웃고 떠들어볼 수 있을까..

여행이 갖는 의미에는 이런것도 있다. 단순히 건물만 보고 사진만 찍어댄다고 남는게 아니다.
이런녀석 저런녀석 많이 두루두루 많이 만나고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눠서,
조금이라도 서로의 나라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많이 이해해야한다.
세계인이 된다는거, 말이 폼나서 그렇지 사실은 별거 아니다. 어렵지 않다.

"으하하.. 이거 웃기네.."라고 한국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순간, 문득, 사람이 그립다. 외롭다.
이럴리가 없는데, 단순히 혼자 있지 않은게 아니고 말 통하는 친구 사귀어서 떠들썩하게 놀고 있는 와중에도,
자꾸만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진다. 말도 안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람?

입에서는, "아 왜 이러지?"라고 다시 혼잣말이 나온다.
사람이 어느정도 시간 동안 혼자 있게 되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혼잣말을 한다는데, 못하는 영어지만, 이렇게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도 외롭다면..
한국말을 안해서 그런걸거다.

그러고 보니 런던에서 상기와 헤어진 후로, 일주일가량 한국어를 해 본 기억이 없다.
스코틀랜드에서 한국 배낭족을 만날 구석이라고는 에딘버러정도 밖에 없었지만 그나마도 만나지 못했고,
빠리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간간히 마주치는 한국 배낭족들은
죄다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는통에 말을 걸어볼 계제가 없었다.

아니, 말을 걸어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내가 왜? 어차피 한국의 거리에서 마주치던 사람들인걸?
스카이섬이나 라이마을 같은 이른바 오지에서 마주치는 한국 배낭족이면 반갑기나 하지,
요즘처럼 너도 나도 유럽행인 시대에서 "아이구 반갑습니다. 한국인이시죠? 저도 한국에서 왔습니다."
라고 말 거는건 퍽이나 머쓱한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대가로, 갑작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외로움에 빠진 것이다.
한국말을 하고 싶다..
다른 한국 친구를 만나서, 여태껏 내가 본 것들을 들려주고 싶고,
그 친구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가수는 이선희가 우주 최고라느니, 서울 방세가 너무 비싸서
촌놈 서울 생활 못 해먹겠다느니 시시껄렁한 잡담도 나누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한국 배낭족이 모이는 곳은 단연코 한인민박일텐데,
나는 빠리에서의 일정동안 호스텔 숙박비를 죄 지불해버린채였다.
한국인 좀 만나고 싶다고 기껏 친해진 사람들을 두고 훌쩍 떠나는 것도 썩 좋은 선택 같지는 않았다.
그럼 길에서 만나면 되겠구나, 유명한 관광지, 배낭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릴만한곳,
그 중에서도 내가 아직까지 가보지 않은 곳.


백배를 펼쳐 들었다.
가볼 만한곳 별 세개 만점.
아직 가보지 않은 곳.


몽마르뜨.



아멜리에의 몽마르뜨언덕.

유럽으로는, 혼자 여행 가는 한국 아가씨도 많다고,
넌 분명히 그 중 한명에게 홀려서 헤롱거리다 올거라는 한 친구의 충고인지 비난인지가 머리 한켠을 스친다.

그래, 몽마르뜨, 이름부터 얼마나 예쁘냐.
내가 여자라도 빠리에 짐 풀자 마자 당장 가겠다.

앞뒤 볼 거 없다. 룸메이트들에게 이따 밤에 보자고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카메라에 책자에 생수에 수첩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그 와중에 거울을 보면서 머리에 왁스는 빳빳하게 발라주고,

바로 지하철역으로 튀어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