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치꼬리의 러브스토리] 사랑해!사랑한다구...<10부. 총명하고 지혜롭게>
<10. 총명하고 지혜롭게 >
인하대병원에 도착하여 엠블란스에서 내리니 이미 사위는 어둠에 쌓여있었다.
병원에서는 우리가 도착한다는 연락을 사전에 받고,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연주를 바로 수술실로 대려갔다. 나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의료용 이동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연주에게 별다른 위로의 말도 해주지 못하였다.
수술실 밖 딱딱한 벤치에 앉아 멍한 상태로 앉아 있는데, 의사 한명이 나에게 와서 서류를 드밀며 설명을 하였다.
“연주씨 보호자 되시죠?”
“아..예.....”
“지금 수술 준비중이시구요. 수술 시작전에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 서명이 필요합니다.”
“이번 수술은 제왕절개 수술로 위험도는 그리 높지않지만, 가끔은 마취에 따른 부작용을 보이는 환자가 있고, 더러는 수술 후 폐혈증 후유증을 ......브라브라브라......”
“그러니까 여기다 서명하면 되는 겁니까?”
“예. 여기다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제왕절개 수술은 흔하게 행하는 수술 아닌가요? 그런데 무슨 사망시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않는다는 조항까지 있나요...뭐 지금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 서명은 하는데, 좀 무섭군요.”
의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절차가 그렇습니다.”
나는 연주가 수술중 사망하여도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수술동의서에 “보호자”의 지위에서 서명을 해주었다.
홀로 밴치에 앉아 있으니 별 오만가지 잡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몸무게 기준으로 100명중 97번이나 98번에 해당할 정도로 저체중이라는데, 혹시 장애인이면 내가 잘 키울수 있을까... ’
‘만약이라고는 하지만 만약 연주가 수술중에 죽으면, 나는 장애인 아이를 혼자 키워야겠구나... 불쌍한 우리연주... 신랑 잘못 만나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이리 죽는구나... 미안해..미안해... 흑흑흑...’
‘연주가 죽으면 나는 절대로 재혼하지 않으리라. 나에게 있어 호적에 배우자로 오를수 있는 사람은 연주이외에는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으리라. 남자가 지조가 있지. 자기야 힘내. 나에겐 당신 밖에 없어. 아이는 어떻게 되어도 괜찮으니까 당신만 건강하게 내곁으로 돌아와줘....연주야.....미안해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네... 이럴줄 알았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가서 산부인과 전문의되어 당신 내가 수술 시켜줄걸...’
‘그냥 아이 낳지 말고 우리 둘이 살걸, 괜시리 임신시켜서 고생시키고... 혹시 더 이상 연주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녀에게 인사도 못했는데.... 그러면 안돼...!“
얼토당토 않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벤치에 앉아 얼굴을 찡그렸다, 눈물을 찔끔했다가, 연애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렸다가, 잘못되었을 때에 대한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갈까... 고민하다가 보니 근 두어시간이 지나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와중에도 ‘어 저녁밥을 아직 안먹었네’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제 연주가 수술실에서 나올지 몰라 담배피러 나가지도 못하고 그리 대기하고 있는데, 복도끝에서 아버지와 어머님이 오고 계셨다.
“아이고. 아들아... 새아가는 수술실 들어갔냐..”
“어머니. 여기를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부모님을 뵙자 걱정이 좀 풀어지며 의지가 되었다.
“네가 음성 메시지 녹음해 놓은것 듣고는 아주대병원 갔더니 인하대 병원으로 옮겼다고 해서 부리나케 오는데, 인하대 병원이 어디있는 줄을 알고 오겠냐... 몇 번을 헤매다 이제 겨우 왔다. 새아가는 수술 들어갔고..”
“예. 두시간 전에 들어갔는데 아직 안나와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아무도 안 알려주고... 엄마 연주 잘못되면 어떻하죠...?”
“아이고.. 걱정은. 아무일 없을 테니 걱정말고....”
그때 수술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여자 간호사 두명이 아기바구니를 이동 받침대에 올려놓고는 나왔다.
“김연주씨 가족분..”
“예.. 접니다.” 내가 쏜살같이 간호사에게 다가가니..
“따님입니다. 확인하세요.”하면서 포대기로 꼭꼭 싼 신생아를 보여주며 “자... 손가락 5개씩 10개, 발가락 5개씩 모두 10개. 이상없죠?”
“아이가 작아서 바로 인큐베이터에 넣으니까 면회는 내일 오전에 하세요...” 하더니 다시 포대기로 아이를 꽁꽁 감싸고는 휘리릭 가버렸다.
“산모는요..?”
“아..예 수술 잘 되었습니다. 건강하니 걱정마시고 잠시 후 회복실로 옮기니까 그리로 오세요”
긴장이 확 풀려버렸다.
99년 4월 20일 밤 9시 30분경. 연주와 멜치의 첫 아이가 세상과 만난 시간이다.
“아들아. 뭐 번개 같이 보여주고 대려가서 잘은 못봤다만, 애기가 이목구비가 또렷하니 이쁘구나. 축하한다 아버지가 된걸...하하하” 아버지께서 덕담을 전해주시는데,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핑하고 돌더니 왼쪽 빰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아 씨........ 나를 닮은것 같네.... 저렇게 천사같은 아이를 장애인이면 어떻하지 라고 고민을 했다니 아기야 미안하다....’
‘오.....하느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아이가 태어나게 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키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큼은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에게 의지하고 감사드리고 싶었다.
잠시후 연주는 회복실로 마취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상태로 이동되어 왔는데, 마취중에도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악몽을 꾸듯 누워있어 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어머님은 싱글벙글 거리시며, 연주의 마취가 깨어나길 기다렸는데, 내일 새벽이나 되어야 깨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일단 집으로 귀가하시고 아침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다.
새벽녘에 연주가 깨어나더니 나를 보고는 첫마디로 물었다.
“우리 애기 어떻게 되었어..?”
“어떻게 되긴. 잘 태어났고 지금 인큐베이터에 가있어. 살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정상이고 아주 예쁜 딸이니까 아무 걱정하지마. 정말 수고했어...”
“정말이지, 나 안심시킬려고 거짓말 하는거 아니지....” 연주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두눈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다가 수술한 아랫배가 아파 찡그렸다가 하였다.
간호사가 들어와 진정제를 놔주어서 다시 연주는 잠이 들고, 나는 연주가 누워있는 침대 곁에서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고는 아침을 맞이 하였다.
다음날 배가 아직 당겨 거동이 불편한 연주가 아기를 자기눈으로 꼭 봐야 안심하겠다고하여 인큐베이터에 누워있는 우리 아기를 보러갔다.
새벽차로 올라온 장인, 장모님, 어머니, 아버지 모두 다 인큐베이터 실에는 출입을 금지시켰으나 부모는 오전에 한차례 출입을 허용하여 연주와 같이 아이를 보러 갔다.
인큐베이터 앞에는 몸무게 1.7Kg이라고 쓰여있었다. 정상 신생아의 1/2 수준이었다.
우리 아이는 분홍색 모자를 쓰고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입에 산호호흡기를 쓰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어제 잠깐 볼 때는 몰랐는데, 신생아실의 투실투실 살이 올라있는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아이는 이디오피아 난민 수준이였다. 그 모습을 보고는 또 연주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리고는 “다롱아 미안해... 엄마가 부실해서 이렇게 고생하는 구나”하며 또 징징거렸다.
아이는 보름동안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큰 후 2Kg이 되어 퇴원하였는데, 걱정한 것에 비하여 모유도 잘먹고 잠도 잘자고 응가도 잘하고 목청좋게 울기도 잘하여 전 가족의 걱정을 덜게 해주었다.
100일이 되었을때 아이의 체중은 정상 아동의 90% 수준으로 회복하였고, 살집이 오르자 토실토실한 볼과 땡그란 눈망울이 너무너무 예뻤다.
아버지께서는 이름을 민지(慜智)라고 지어주셨다. 총명하고 지혜로우라고....
그리고 나는 연주를 민지에게 낮이던, 밤이던 빼앗겼다.
이녀석이 지 엄마가 코빼기만 안보여도 빽빽거리며 울어서 출산 휴가 기간 2개월동안 나는 연주 곁에 거의 누워보지를 못했다.
이제는 자유형은 물론이고 그레꼬로망형도 기회가 오지 않았다.
민지가 밤에 깨어나 울기 시작하면 잠을 설치게 되어 다음날 일하는데 지장이 있지 않냐며 연주가 나를 작은방에서 자도록 했다.
그래서 연주는 민지랑 자고 나는 혼자 자기 시작한 것이...........................
오늘로써 9년 6개월 23일을 기록하고 있다.
IMPOSSIBLE IS NOTHING.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편은 이번 연재의 마지막 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