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심스런 접근)

분임별 토론회를 거친 이후 연수원에서의 나의  생활은 조심함의 연속이였다.

첫날 성깔한번 부렸다가 성격 이상한놈으로 인식될까 걱정스러워 말수도 줄이고, 그냥 열공 모드로 들어갔다. 

아침에 강의실에서 (내 옆자리였으니까) 김연주씨와 목례 인사 정도는 했지만, 대화는 2주동안 첫날 나눈 “살인이 뭐가 나쁜감”  과 “행간좀 읽으세요”가 전부인 냉냉한 사이.

이 처자 참하기도 하지...  연수원 끝나는 날 시험성적 발표하는데, 500명중 전체 2등을 한다. 나는 138등.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내니, “고맙습니다”라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삐져도 한창 삐졌나보다.

나나 그녀나 배치지역은 경기지역이였다.

다음주 월요일 부터는 사회생활의 시작이다.  김연주씨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게되었단 자체는 좋았지만, 그녀는 나에 대하여 이미 안좋은 경험을 했는데 어떻게 접근을 해야할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 부서 배치는 내가 재무관련 분야인 반면에 김연주씨는 고객상담실에 배정되었다. 여직원에 대한 차별과 업무 영역이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한직이다.

신입생활은 정신없는 연속이였다.  연수원에서 배우긴 했지만, 어디 실전과 같을 수 있는가.. 실수도 많이하고 뭐 대부분은 고참들이 시키는 업무보조역이다.

그러다가 한 1개월 정도 지났을때 지하 사원식당에서 오가며 눈인사 정도만 해오던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감사합니다. 고객상담실의 김연주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얼라  전라도 아가씨가 표준말 구사가 자연스럽다.  대학도 그쪽에서 다녔으면서..

목소리 톤을 약간 나이든 목소리로 바꾼다. (대학때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를 해서 요런거 잘한다)

“여보시욧...!  나가 그 회사에 불만이 많어브러...”

“넵...?”  급당황하는 그녀의 목소리.

“그렁게.. 지난번에 귀사가 우리와 계약을 맺은 건에 결재를 받았는디...  수표가 처리가 안되면 우린 어쩌란 거시여....?”

“네... 선생님 저 죄송하지만 저보다 높은분을 바꿔드리면 안될까요..?  제가 신입사원이여서...” 당황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든다.

큭큭거리는 웃음을 뒤로하고 좀더 골리기로 했다.

“아니..  나는 높은사람 필요읍꼬 .. 아가씨 이름이 뭐라고?  어... 거시기 기민주?  아  김연주...그려...신입잉깨 많이 힘들텐디, (목소리 톤을 원래 목소리로 바꾸며..) 저랑 복도에서 차나 한잔해요...”

“누..누구세요..?  멜치씨?    아휴 깜딱이야.... 고객전환줄 알고 놀랬잖아요... 저. 바. 빠. 요. 끊.어.요.”

전화는 끊겠다고는 했지만, 목소리톤에 안도감 같은 감정이 들어가 있다. 

“보니까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 것 같아요.  좀 쉬엄쉬엄 하시죠...”

“다들 열심이셔서요...  나중에 통화해요.”

일단 말은 텄다.   첫 만남은 티격태격이었지만, 그래도 이 큰 조직에서 동기라는 인연이 어디냔 말이다.   나와 당신은 이미 이런면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차근차근 진행해보자고 생각한다.

퇴근시간에 저녁이나 하자고 전화 할까 하다가 너무 서두르는듯하여 그냥 퇴근을 하기로 했다.

회사 1층 롤링문을 밀치고 나가니 김연주씨가 도로변에 서 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체형이나 느낌이 눈에 익은 스타일이다..

 

이름을 부르며 그쪽으로 다가가려는데,  인도쪽으로 차선을 변경하는 엘란트라를 보더니 손을 버쩍 든다.

그녀가 조수석에 낼름 올라타니 차가 빠른 속도로 회사앞을 떠나간다...

누구란 말인가.  운전석의 저 젊은 남자는..... 

6월의 화창한 오후 햇살이 머리위로 쏟아져서인지 현기증이 인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