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Raiman [PureWater] - Song For Elfriede






어른왕자의 방황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난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여우가 말했다.

"아! 미안해."
어른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고 다시 물었다.
"길들여진다는 게 뭐야?"

"넌 여기 사는 남자가 아니구나. 넌 무얼 찾고 있지?"
 여우가 물었다.

"난 사랑을 찾고 있어."
어른 왕자가 말했다."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남자들은 돈을 가지고 데이트를 하려 해. 정말 곤란하기 짝이 없어!
그러면서 또 허세도 키우지, 그게 그들의 유일한 즐거움이야. 너는 쾌락을 찾고 있니?"

어른 왕자가 말했다.
"아니. 난 사랑을 찾고 있어.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그걸 쉽게 잊지. 그건 관계가 생긴다는 뜻이야."

"관계가 생긴다구?"

"그래."
 여우가 말했다.
"지금 내게 넌 세상에 흔한 여러 남자들과 전혀 다를 게 없어.
그래서 난 네가 필요 없어. 너 역시 내가 필요 없지.
나도 세상에 많은 여자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여자일 뿐이니까.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필요해져.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남자가 될 거구…"

"알 것 같아."
어른 왕자가 말했다.
"한 여자가 있어… 그녀가 나를 길들인 것 같아…"

"그럴 수 있겠지."
여우가 말했다.
"지구엔 많은 여자가 있으니까…"

"아니, 지구가 아니야."
어른 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별안간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다.
"그럼 다른 별이란 말이야?"

"그래."

"그 별에도 바람둥이가 있어?"

"아니 없어."

"그거 대단하군! 그럼 훈남은?"

"없지."

"역시 완전한 것은 없어."
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우는 다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내 생활은 너무 단조롭지. 나는 훈남을 쫓고, 남자들은 나를 쫓고...
남자는 모두 그게 그거고, 여자들도 모두 그게 그거지만.....
그래서 난 좀 지겨워.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이면 내 생활은 햇빛처럼 눈부시게 될 거야.
네 발 소리는 다른 발 소리와 완전히 다르게 들리고,
난 그걸 구별할 수 있게 돼.
다른 남자의 발소리를 들으면 나는 관심도 없지.
그러나 네 발 소리는 음악처럼 내 귓속에스며들거야.

저기, 술집이 보이지?
나는 술을 먹지 않아! 술은 내게 전혀 소용이 없어.
그래서 술집을 봐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그건 슬픈 일이야!
네 몸매는 맥주병이지.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이면 정말 놀라운 일이 생기게 돼.
술집만 보면, 네가 생각날 거야.
나는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사랑하게 될 거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오랫동안 어른 왕자를 바라보았다.

"제발… 나를 길들여 줘!"
여우가 말했다.

"그러구 싶은데… 난 시간이 없어. 사랑을 찾아야 하고 또 알아야 할 것도 많아."
어른 왕자가 대답했다.

"누구나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가게에서 미리 다 만들어진 물건을 사지.
그러나 사랑을 파는 가게는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 없어.
사랑을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이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른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 그렇게 매너를 지켜야 해.
내가 곁눈질로 너를 봐도, 너는 말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게 될 거야…"





이튿날 어른 왕자는 다시 왔다.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지지.
네 시가 되면,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 못하게 돼.
행복의 대가가 어떤 건지 알게 되는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다듬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이벤트가 필요해."

"이벤트가 뭐지?"
어른 왕자가 말했다.

"다들 그것도 잊고 있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바람둥이들에게도 이벤트가 있지.
그들은 토요일엔 마을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토요일은 무척 신나는 날이지!
그래서 나도 명동까지 산책을 나가.
만일 바람둥이들이 아무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다 그게 그거고, 내게도 산책이 없을 거야."

이렇게 어른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가 말했다.
"난, 울 것만 같아."

"그건 네 잘못이야. 난 너를 전혀 괴롭히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길들여 달라고 해서…"
어른 왕자가 말했다.

"그렇지....이건 내가 감당할 몫이야."
여우가 말했다.

"그런데 넌 울려고 하잖아!"
어른 왕자가 말했다.

"맞아, 정말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럼 넌 도대체 뭘 얻은 거지?"

"얻은 게 있어. 저 술집의 노래 말이야."
여우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다시 여자들을 보러 가렴. 네 여자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란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다시 작별 인사를 하러 와 줘. 선물로 비밀 하나를 알려 줄게."




어른 왕자는 여자들을 다시 보러 갔다.
그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내 여친과 전혀 비슷하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도 누구를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옛날 내 여우와 같아. 그 여우는 세상의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다를 게 없었지.
그러나 나와 친구가 되면서, 그 여우는 이제 내게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여우가 됐어."

여자들은 당황했다.

"너희는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는 비어 있어."
어른 왕자는 다시 말했다.
"아무도 너희를 위해 죽지는 않을 거야.
물론 내 여친도 멋모르고 지나가는 사람에겐 너희와 비슷하겠지.
그러나 그 여자 하나가 너희들 전부보다 소중해.
그건 내가 정을 준 여자이니까.
내가 보호를 해준 여자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니까...
내가 불평을 들어 주고,
허풍을 들어 주고,
어쩔 때는 침묵까지 들어 준 여자이니까.
그녀가 내 여자란 말이야."




그는 여우에게 돌아왔다.

"잘 있어."
그가 말했다.

"잘 가."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도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에도 보인다."
어른 왕자는 기억하려고 했다.

"네 여친이 그렇게 소중해진 건 네가 여친에게 뺏은 시간 때문이야."

"나의 여친에게 뺏은 시간 때문이야."
어른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따라 말했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건 아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건 아냐..."
어른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따라 말했다.

“네가 그녀의 삶을 다 살아 줄 순 없어........
넌 당당하게 널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거야...나머지는 그녀의 몫이야...“

“나머지는 그녀의 몫이야........
”어른 왕자는 마지막으로 여우의 말을 되뇌며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