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치꼬리의 러브스토리] 사랑해!사랑한다구...<6부. Appetizer>
<6. Appetizer>
원룸에서의 1년여 소꿉장난 같은 생활은 1년을 못 채웠다.
5월에 결혼하고, 그다음해 4월초에 아파트로 입주를 하게되었다.
연주는 너무나 신나하였다.
결혼은 했다고하지만, 우리 부모님을 비롯하여 누구를 초대할 수도 없고, 장인장모님이 놀러 오셔도 집에서 밥한끼 먹을 수가 없었다. 4명분의 식사를 차릴 상이 없거니와 자리도 협소하었으니까... 그런 소꿉장난 같은 신혼생활을 마치고 이제 우리집에서 가구를 새로 싹 사고, 침대도 더블침대로 사고, 옆집 눈치 볼것도 없이 두사람만의 완벽한 공간이 만들어지니 그러할 수 밖에...
이사가 가능한 날부터 조금씩 짐을 옮기기 시작하여 그때 타고다니던 르망 92년식 중고차 뒷자석과 트렁크로 4번인가 옮기니 장롱과 장식장을 빼고는 대부분의 짐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단촐한 신혼 살림이였다.
연주는 집주인에게 원룸 전세보증금 2,000만원을 받더니 나에게 1,000만원을 주며 아파트 융자 받은거 갚으라고 하고는 1,000만원으로는 자기가 사고 싶은거 다 사고 남는건 자기가 쓰겠다고 했다.
연주랑 같이 가구들을 보러 다녔다. 장롱, 화장대, 침대, 쇼파, 각종그릇, 가스랜지, 냉장고, 전자랜지, 에어콘, 커텐, 침대이불, 장식장 등등등, 등등등....
기존에 있던것은 용산에서 직접 끌고온 애증의 텔레비전과 비디오 그리고 연주 원룸 입주 기념으로 사준 오디오를 빼고는 전부 새것으로 갈았다.
가구가 들어오고, 집안 청소도 완벽하게 하고 모든 정리를 다하고 나서 쇼파에 앉아 우리집을 바라보니 참 행복했다.
“자기야. 집 참 넓다.”
“응 진짜 넓다. 원룸에 살 때 그 집이 좁은지 몰랐는데, 이리로 이사와보니 그동안 그 좁은데서 어떻게 살았나 싶네...”
“아버님께 고맙네... 아버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언제 이런집에서 살수 있었겠어...”
“아...아들은 나 혼잔데 이정도는 해주셔야지....뭐.”
“맞아 뭐 내가 워낙 이쁘니까. 나랑 결혼 할려면 이정도 집은 마련해주셔야지......헤헤헤”
연주는 너무 들떠했다. 물론 나도 그러했다. 융자받은 것은 천천히 월급 받아서 갚아 나가면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은행에서 융자받은 2,000만원의 이자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IMF는 그 전해 12월에 왔지만, 그 후유증은 봄부터 대기업의 도산, 은행의 지불정지, 환율과 은행이자의 급상승 등으로 나타났으며, 국가차원의 비상사태로 돌입한 것이다.
회사에서 상무와 부장급 1/3이 구조조정 되었다.
회사에서는 어제 누가 권고사직을 받았다고 하더라, 5년차 이하도 근무성적이 나쁘면 퇴직시킨다고 하더라, 부부사원의 경우 한명만 남기고 한명은 강제 퇴사 시킨다고 하더라 등등 분위기가 말이 아니였다.
특히 연주의 경우에는 부부사원의 경우 한명만 남긴다는 소문에 몹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월급여도 분기마다 나오는 상여금이 50%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우리는 맞벌이라서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였지만, 자녀가 있는 선배들은 급여 삭감으로 인하여 대단히 생활을 어려워 했다.
잠깐 출장을 갔다 사무실에 들어와보니 조직개편과 함께 인사발령이 났다.
나는 전혀 변동이 없었는데, 연주는 집에서 한시간이 넘는 분소로 발령이 났다.
연주 사무실로 전화를 하니 분소에 인사드리러 갔다고 하여 통화를 못하고 퇴근 시간이 되어 집에 들어가니 연주가 눈이 퉁퉁 붙도록 울고 있었다.
“자기가 그만 울어.... 분소로 간게 뭐 어때서 그래. 좀만 있으면 다시 오게될건데 ...”
연주는 대답 없이 계속 울기만 하더니 말했다.
“나 너무 자존심 상해. 입사해서 4년동안 참으로 열심히 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람을 모욕을 줄수가 있어. 내일 사표낼꺼야.... 분소 가보니까 책상도 없더라. 그쪽에서도 나에게 무슨일을 맞겨야될지 허둥대고 있었고, 특히나 그 분소의 노처녀 하과장 알지. 그 사람이 날 보더니 피식 거리며 비웃는거 있지....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고....엉엉엉.... 내가 입사 성적도 전체에서 2등인데, 여자라고 이렇게 차별해도 되는거야.....엉엉엉.....”
뭐라고 할 말이 있겠는가. 그냥 등이나 토닥토닥 두들겨주고 휴지를 적절한 시기에 그녀에게 전달해 줄 수 밖에.....
티슈통의 휴지 한통을 거의 다 비워낸후 울음을 그친 연주가 말한다.
“자기야 그런데 사직서는 어떻게 써.....”
“좀 신중하면 어떨까... 지금 당신 기분은 알겠는데, 사표야 하루이틀 늦게 낸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내가 듣기에도 당신 평판은 좋았는데 분소로 보낸 이유를 정확히 알고 그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싫어. 나 안다닐래... ”
“에이구.... 알았어. 내가 써줄게.... 뭐 간단해. 사직서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유로 퇴직하고자 합니다. 라고 자필로 쓰고 날자와 이름쓴 다음 서명하면 끝이야....”
“그렇게 간단해?”
“응”
연주는 정말 화가 많이 났는지 그 자리에서 백지에 사직서를 쓰더니 봉투에 담아 가방에 넣고는 내일 본부에다가 꼭 사표내고 말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연주는 나에게 말했다.
“이제 자기가 나 먹여살려 줘... 요즘 같은 시절에 여자가 이만한 직장 재취업하기도 어려울테고... 취업해봐야 월급이 예전 수준 같기나 하겠어. 이것 저것 안되면 나 집에서 살림하고 애키울테니까 그런줄 알아....”
“알았어. 우리 두식구 내월급으로 못 먹고 살겠냐... 걱정말고 자존심 팔아가면서 까지는 살지 말자. 그것까지 버리기에는 우리 아직 젊잖아”
나는 연주가 안쓰럽기도 하고, 쉽게 마음먹기 힘든 결정이였을텐데 차분한 성격의 그녀가 이리 나올만큼 무척 자존심이 상했구나 싶어서 그녀의 결정을 전적으로 동의해주었다.
오후에 인사과 동료에게 연주가 사표냈더냐고 물어보니 안냈다고하며, 연주씨가 왜 사표를 내냐는 것이다.
“야... 한시간이나 가야되는 먼 분소로 보낼때는 그만 두라는거지 그럼 머냐?”
“아이참..... 이 병따리..... 그렇게 정보가 어두워서.... 너 귀좀 열어두고 살아라... 김연주씨 분소로 보낸건 그곳에 있던 하과장이라고 꼴통 노처녀 쫒아 낼려고 보낸건데 그것도 몰랐냐? 하과장은 실적이 바닥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그런곳에 일잘하는 김연주씨 보내서 싹 업무를 뺏어 버리지 않으면 그 자존심 강한 노처녀가 자진해서 나갈 것 같아?”
“어.... 그런거야? 야! 그런건 사전에 당사자에게 언질을 줬어야지... 연주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제 하루종일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였다. 아 내참......”
연주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이런건 그녀가 나에게 이야기 듣는 것보다는 다른 회사내 정식 루트를 통하여 듣는것이 좋을 듯하여.....
하루종일 찜찜하던 기분이 풀어지며 그냥 헤죽헤죽 웃음이 나왔다. 나 혼자 벌어서 언제 대출금 갚고, 애 교육비 대고, 집 늘리고, 똥차 갈고 한댜냐 하는 속물 걱정이 눈녹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녁때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연주는 내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앞치마를 두르고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뭔가를 지지고 볶고 하면서 싱크대 라디오 음악소리를 들으며 룰루랄라를 하고 있었다.
“어....당신 벌써 퇴근했네... 기분도 우울할텐데 무슨 음식을 만들어. 나가서 그냥 간단히 먹지...”
나는 짐짓 모르는척 운을 틔웠다.
“어머! ...자기 왔어요. 얼릉와요....” 결혼한 후 부터는 연주는 자기가 기분 좋으면 존대를 해준다.
“당신 기분 좋은가봐... 사표내고 나니까 홀가분해서 그러는거야? ”
“응?.......응. 사표내고 나니까 이제 아침마다 늦잠자도 되고, 머리아프게 일 안해도 되고, 낮에 수영장도 다니고 취미생활하고 할려니 신나네... 호호호.....”
이 여자 연기가 별로 능숙하지 않다. 그래도 자기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모르는척 해야지...그녀의 회복된 자존심과 나를 지금 속이고 있다는 것에 지금 무한한 재미를 느끼고 있을텐데...
“자기야. 나 오늘 기분도 울쩍하고 해서 정장하나 샀는데... 이거....어때....” 연주가 장롱에서 화사한 아이보리색 투피스 정장을 꺼내더니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꺼내온다.
“응 예쁘네....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당신 기분 전환된다면 그깟 옷이 문제야. 잘샀어. 잘샀어..”
“어머 철없다고 뭐라고도 안하네.... 그런데, 자기 걱정도 안돼? 나 오늘 사표내고 왔어. 이제 당신 혼자 벌어서 우리 살아야 하는데? 좀 있으면 애기도 낳아야하고, 집 대출금도 갚아야하고, 당신 차도 바꾸고 싶다며.... 그런거 다 못하는데도 그래도 괜찮아...?”
“그런게 뭐가 중요해. 나는 당신이 행복한게 제일 좋아. 당신이 자존심 구겨가며 회사다녀 벌어오는 월급이 뭐가 좋겠어. 당신이 지금 사표내는것이 더 행복한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옷도 잘 샀고. 퇴직 기념으로 내가 한 벌 사줄려고 했는데 딱 내취향이네... 그리고 퇴직금 얼마 안되겠지만 나오는것 당신 쓰고 싶은데 다 써....”
나는 속으로 웃어 죽겠는데도 그녀에게 맞장구 처주었다.
연주는 약간 의아해 하면서도 다시 한번 나를 떠본다.
“자기 나 퇴직해도 군산 엄마한테 내가 생활비 보내듯 보내줘야 돼. 지금같이 50만원씩은 어렵겠지만 30만원은 보내 줄 수 있지? 그리고 나 이제 살림 할거니까 바로 애기도 가질건데, 요즘 애 하나 키우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줄 알아? 나 사표내는 것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괜찮다니까. 나도 조금 있으면 승진할테고 그러면 월급도 오를테고, 당신이 내월급으로 알뜰하게 살면 지금 같지는 않아도 할 도리는 다 하면서 살수 있어. 그런걸로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 하고 싶은데로 해."
"당신이 행복한 것이 가장 나에게도 행복한 것이야.”
연주는 앞치마를 두르고 후라이팬으로 야채를 볶다가는 감격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내 곁으로 왔다.
그러고는 내목에 폴짝뛰어 매달리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한다.
“자기 진..........짜 나 사랑하는구나...”
“그럼! 사랑하.....흡....................... 아이고. 들어와서 아직 나 이도 안딱......흡........... 자기야 나 배고파....밥이나 먹고....흡..........”
“가만있어. 지금 밥이 문제야......우리 신랑이 이렇게 귀여운데.... 내가 더 맛있는거 줄께. ” 연주가 내 손을 잡아 침실로 이끌어 침대로 탁하니 밀어 넘어트리더니 앞치마를 스르륵 풀어 내리며 말했다.
“밥 먹기전 에피타이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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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에피타이저는 저녁식사보다 훨신 훌륭했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