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04를 작성도중에 그만 뒀고 #05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 김도 많이 빠졌고 이전의 내용들을 총정리해서 하나의 총집편으로 일단 이야기를 접어볼까 합니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제 글을 열심히 읽어주셨던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크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리니 마음과 손가락에 스몄던 아스라한 감정들이 너무 많이 사라져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일단 합숙이야기를 좀더 진행해보겠습니다.

 

합숙3일차.

동성고는 동국대 야구부와의 연습경기를 위해 일산으로 떠났습니다.

동국대 야구부에 가기전까지는 그냥 평소처럼 낄낄대고 잡담하며 이동했는데

동국대에 도착하자마자 선수들은 긴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성고 선수들이 짐을 푼곳의 반대편 끝에서 한 투수가 롱토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이름은 모릅니다만 3학년? 아니면 4학년으로 보이는 동국대 투수를 보며 동성고 선수들은 이런말을 했습니다.

 

A: 최고 149에 평균 145라고 하더라야.

B: 오늘 점수못빼면 밥 없다고 했어.

C: 폼이 허버 멋져븐다.(전라도 사투리 그대로)

D: ............

 

어쨌든 이런 반응들 속에 경기시작전 감독님은 선수들을 모아놓은 다음에 일단 한마디 하셨습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더 쎈팀이랑 연습하러 왔으니깐 지더라도 파이팅넘치는 모습만 보이라는 거죠.

그렇게 경기는 시작되었습니다.

 

동국대 투수의 투구를 직접보고 촬영도 했는데 공이 빠르긴 빠르더군요. 체인지업인지 슬라이더인지 구별은 안되지만 빠르게오다가 뚝떨어지는 공도 던졌던 것 같고 - 기록하던 동성고 1학년선수는 슬라이더라고 했습니다. 아마두요. -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배트에 맞추기도 힘들어하는 것 같더군요.

1회에 이 투수는 가볍게 3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재미있던 것은 동국대야구장으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와 있더군요. 모자에 P가 써져있는걸 보니 피츠버그에서 온걸로 짐작해보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 한명과 2명정도의 스카우터들이 스피드건을 들고서 동국대 투수의 투구를 유심히 살펴보더군요. 아마야구 따라다니면서 본 공중에 가장 빠른 공이었던 것 같으니까 아마 유망주로 상당한 평가를 받을듯 하더군요. 거기다가 키가 190이니 타점 높은 공을 내리 꽂을수도 있어서 포텐이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옆에서 곁가지로 들은 이야기가 부상경력인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정도 급의 선수가 고등학교때 프로에 지명되지 않고 대학에 왔다는건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뜻일텐데 듣기로는 몸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하더군요. 일단 어깨에 칼댄적 없고 쌩쌩하다는게 장점이고 팔꿈치에 문제가 있기는 한데 수술없이 재활로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준이라고 하더랍니다.

(동성고 투수코치님 말로는 어깨수술의 경우 성공확률이 절반정도지만 팔꿈치의 경우에는 수술을 하더라도 8~90%정도는 재활에 성공한다고 합니다. 야구팬분들께서는 이 상식 가지고 계시면 좋을듯합니다.)

 

암튼 그렇게 동성고 투수는 2이닝을 던졌고 볼넷1개와 밋밋한 변화구때문에 맞은 안타1개를 제외하면 완벽하게 동성고 선수들을 틀어막고내려갔습니다. 이 선수가 내려가자마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떠나고 동국대에서는 언더투수가 올라왔습니다.

 

여전히 이 앞의 두 경기처럼 동성고 선수들은 밀봉관광을 당한채로 대학팀들에게 아웃카운트를 헌납하고 있었는데 타석에선 한 선수가 뚫어져라 홍현우 코치를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홍현우 코치는 무표정하게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헛스윙. 그 다음에도 이 선수는 계속 홍현우 코치를 쳐다봤습니다. 공이 날라오는 투수는 보지도 않은채 애처러운 눈으로 계속 홍현우 코치를 쳐다보더군요. 하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홍현우 코치. 다음 공은 빗맞은 파울. 그래도 이 선수는 구원의 끄나풀을 잡으려고 발버둥치는 듯 눈망울을 글썽거리며 홍현우 코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홍현우 코치가 웃으며 이상한(?)싸인을 보내더군요. 그리고 그 선수는 안타를 쳤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무슨 일이었는가 물어보려 했는데 홍현우코치가 먼저 이야기 해주더군요.

고등학생이라 수싸움에 약하다보니 다음 공의 구질을 예측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상황별 대응능력도 떨어지고 원하는 공을 골라내는 능력도 떨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홍현우 코치를 바라보며 다음 구질을 가르쳐 달라고 신호를 보냈다는 겁니다.

홍현우코치는 그 신호를 애써 무시하다가 가르쳐주고 그 선수는 안타를 쳤던거죠.

우리가 프로야구를 보면서 투수로 하여금 어쩔수 없이 특정한 공을 던지게 만드는 부분이나

상황별 일반적인 투구패턴에 맞춰 배팅하는 똘망똘망한 선수들이 갖춘 개념을 생각하면 되겠더군요.

 

여튼 최종적으루다가 경기에 지기는 했지만 지난 황금사자기 이후로 어깨를 보호하고 있던 동성고 에이스 유경국 선수가 처음으로 실전피칭을 다시 시작한 날이라 의미 깊었습니다. 그리고 8회와 9회에 1점차까지 추격을 했던 것도 선수들에게 기분좋은 일이었을것 같구요.

 

경기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다음 경기가 성균관대학교와 홍익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성균관대와의 시합이 취소된 관계로

홍익대와의 연습경기만 오전에 진행하게 되었더군요.

 

숙소에서 짐을 풀고 전 학부형들 방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학부형분들과 밥먹고 소주한잔따라주길래 받아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좀 답답하더군요. 아들들에 대한 애정만큼 아들들의 행복을 빌어줬으면 했는데 어떻게 해야 아들들이 행복할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무책임해보이더라구요. 이 부분은 더 길게 쓰자니 너무 뻔한 이야기고 꼭 야구부만이 아니라 전국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부형을 데려다 놔도 똑같은 결론이 나올테니 그냥 패스하겠습니다.

 

그렇게 학부형들 틈에 끼어 잠을 겨우자고 - 밤새도록 간접흡연한 담배연기때문에 힘들었네요  - 버스를 타고 다음 경기를 하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장소는 홍익대 야구부 연습장이었는데 버스가 수원에 있는 경성고등학교로 들어가더군요. 연습하고 이동하려고 그러나 보니까 경성고등학교의 빈 공터에 홍익대 야구부 숙소를 만들어뒀더군요.

 

홍대 야구장이 특이사항은

파울라인근처까지 양옆의 나무가지들이 삐져들어와서 외야 뜬공을 치면 공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 건국대를 갔을때만해도 다 그 정도는 될줄 알았는데 건국대가 가장 좋은 편이었더군요.

 

경기시작전에 기록을 하던 1학년 선수와 이야기를 좀했습니다. 이제막 전입온 이등병마냥  좀 얼어붙은 느낌이었는데 그냥 잡담을 하다가 서글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야구부원이 몇명이나 되냐고 물어봤었는데 1학년이 7명인데 3명이 부상이고 1명은 야구를 할지 안할지 모르고, 다른 한명은 회비를 못내 야구부에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야구부 회비.

참 민감한 문제겠죠?

인터넷상에 루머처럼 떠돌던 밥2그릇먹는다고 구박당했다던 모 선수의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이 모 선수가 이대호라는 소문도 있고 배영수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둘다 아닐지두 모르죠 뭐)

회비가 30만원이라던데 그 돈이 없어서 야구를 접을꺼 같다는 이야기였죠.

서글프더군요. 돈이 뭐길래. 운동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운동을 못한다는게..

 

돈이 없어도 운동을 하려면 남들보다 운동을 잘해야 한다.

돈이 없어도 공부를 하려면 남들보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

 

참 웃긴 논리죠. 그냥 저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씁쓸해져서 촬영은 좀 슬렁슬렁하게 되었습니다.

홍대와의 경기도 동성고 선수들은 당연히 졌고

홍현우 코치가 광주까지 뛰어오라고 농담좀 하고 하면서

3박4일간의 서울 합숙은 끝이 났습니다.

 

가까이 있다보니 확실히 예전보다는 좀 가까워 진거 같기도 하고 훨씬더 많은 것들을 알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좀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 같네요. 슬슬 한명씩 붙잡고 밀착 인터뷰도 좀 해봐야겠구요.

 

 

아. 청룡기 예선은 탈락했습니다.

진흥고에는 이겼지만 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 0:8 콜드게임패를 했죠.

일고 4번타자인 강백산(?)선수에게 투수진들이 농락당한 것도 컷고

전날 진흥고 경기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 이성규 선수가 스타팅멤버로 들어갔으나

클러치 에러를 하면서 점수를 대거 헌납해버렸죠.

 

경기가 지고나니 무서워서 말도 못거는 분위기라 경기장면만 찍어왔는데

딱히 경기장면이 쓰일곳은 없을 것 같고

일단 이제 동성고는 7월달까지 아무 계획없는 야구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다큐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원래 예상했던 구도가 청룡기 탈락이었거든요.

전국대회에서 떨어진 이후부터 이 선수들,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덕분에 1주간 선수들도 쉬고 저도 충분히 휴식을 취했고

다음주부터 다시 광주에서 촬영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선택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로 아이들의 인생이 갈릴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더 진지하게 알아봤으면 하네요.

 

 

2학년 김승보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선수처럼 되고 싶으세요?"

 

김승보 선수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야구만 오래할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디서든요."

 

[이 게시물은 ▶◀ dr.레인님에 의해 2009-07-06 01:12:57 불펜 게시판에서 복사 됨]